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흔히 예술 영화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볼 때 딱히 음미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흐르는 장면들. 잘 만들어진 예술 영화라면 역시 그렇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를 굳이 두자면 제작 규모일지도. 돈 없이 만든다고 무조건 예술 영화는 아니기에 역시 정확하지는 않다. 분명히 선을 긋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매드맥스 시리즈에서는 분명히 선을 그을 수 있는 집단들이 나타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무리, 또는 가스를 차지하고 있는 무리라던지.
사람들은 때로 너는 어느 편이냐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 분명히 말하라 한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족 사회에서 국가를 이뤄 살아가는 오늘날 그러나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그 옛날처럼 야만적인 삶을 살며 전쟁을 치르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흘러가는 이 시간들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영화라도 볼 뿐. 그속에서 어떤 단서 힌트라도 찾으려는 것이었는지도. 처음 매드맥스 시리즈를 볼 때는 그런 의도마저 없었는데.
맥주가 있었고 영화를 찾아나선다. 그게 시작이었다. 분노의 도로는 내 그런 의도를 크게 흔들어놨고 난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도착했다.
그 땅에는 풍요로운. 그런 풍요로운 땅이 있다면 나 또한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을까. 전쟁은 없고 숲과 나무들이 있는 곳. 저 나무 위 열매를 따다 주머니에 넣어 가져올 수 있는 곳이라면.
퓨리오사가 그곳을 떠나게 된 건 전쟁의 위협 때문이었다. 한 무리의 바이커들. 그들이 야만적인 무리라는 이유만으로 먼저 오토바이 연료 호스를 끊는 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퓨리오사. 그들이 돌아가 그 땅을 알리고 다시 쳐들어올까 우려했던 것이다. 그 아이에게 역시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야생성이 있었던 것이다. 본능이었다. 내 땅이 있고 네 땅이 있다면 너는 내 땅을 탐낼 것이고 난 네가 쳐들어올 것을 알고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 인간의 그 본능.
흔히 예술 영화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퓨리오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로운 모습이어서 흥행을 위한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선을 그으라면 그을 수 있고 구조적인 차이 또한 설명할 수 있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건 영화를 둘로 가르는 일이 뭐 좋은 일인가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공작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얻는 것들이 있을 테니. 봐 준 대가로 가스나 무기를 더 얻어 갈 수 있다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것으로 예상한 크리스 햄스워스는 코 분장을 한 채 악역으로 등장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그가 나온 영화를 단 한 편 봤지만 난 그가 그런 역할에 어울릴 것처럼 여긴 것이었다. 그의 몸은 좋다. 키도 크고 호감 가는 얼굴이다. 그렇게 비껴가는 건 감독의 특별한 고집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금발 머리가 아름다운 샤를리즈 테론을 머리 밀게 한 것처럼 큰 제작비가 드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배우로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초반 아역이 연기하는 구간이 꽤 길었다. 알릴라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그 나이 어린 배우는 예쁘기도 예쁘고 연기 또한 훌륭했다. 그 정도 영화에 연기 못하는 배우는 없었지만 특히 인상에 남은 배우였고 잭을 연기한 톰 버크 또한 그랬다. 모두 처음 봤지만.
톰 하디와 샤를리즈 테론을 모두 잊게 하다니. 이 정도면 이 시리즈가 가진 매력 감독의 연출 실력이 대단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처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연료도 식량도 모자란 곳에서 그런 땅을 찾아 나선다는 게 모험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그런 곳이 어떻게 그렇게 꼭꼭 숨겨져 아무도 찾지 못할까 의아했는데 너무 풍족한 세계에 사는 지금 내 모습을 난 보지 못한 것이었다. 꼭꼭 숨어 찾지 못하는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 모험이었다. 누가 등을 민듯 난 그렇게 출발하고 떠난 것이었다. 그게 집 안이었고 내가 이 집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문 적 있었나 싶었는데.
임모탄과 워보이들은 한 번씩 다 본 적 있는 캐릭터들이어서 더 이상 놀랍지 않았는데 등장하는 차들은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진화할대로 진화한 이 시대에 그런 식으로 개조된 차들이 되려 혁신적인 건 그 분위기에 휩쓸린 탓이었다. 먼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없는 인간은 그런 방법으로 힌트를 얻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예측하는 것인지도. 만약 자원이 고갈되고 모든 것이 무너져 이 땅이 황무지가 된다면 말이다.
본래의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분노의 도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 그게 1편은 아니지만 난 그곳에서 출발해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결국 정의로운 자만이 살아남을 거라는 감독의 그 예측이 과연 그런 결말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조지 밀러는 아직 결론짓지 않았다. 옛날 시리즈들을 안 봐서 난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그 끝에 대해 차라리 난 이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만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미련뿐인 삶 속에서 찾은 단 하나의 빛이 있다면 그 빛을 따라 가고 싶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2024/ 조지 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