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2부

episode 2

by 문윤범


어느 날은 한 무리의 캐나다 아이들이 메트로 열차에 우르르 올라탄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들처럼 보였고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방 디자인도 모두 같은 것이었다. 속된 말로 양키스러운 분위기였는데 프랑스 아이들과는 또 달랐고 사회성도 별로 없어 보여 마치 이런 대도시에서는 마주치기 힘든 냄새를 풍길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먹던 것만 먹고 자란 듯한 느낌이었다.

난 그 아이들을 곁눈질로 유심히 관찰했다. 미국 아이들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한 아이의 가방 끈에 적힌 글자를 보게 되었다. e

f

t

o

u

r

s


c

a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캐나다 아이들이었다.

어느 날은 또 불량해 보이는 고등학생 몇 명이 열차 안에 우르르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프랑스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시끄럽게 구는 걸로도 모자라 자리까지 차지하며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난 그 틈 사이에 끼이게 되었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다음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어디선가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는데 러시아 인들 같았다. 열차에 올라탄 두 명의 남성이 러시아인처럼 말하고 비틀거리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몸을 접어 공간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난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그들은 단지 대화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우연하게도 미국인들이나 러시아인들에게 은혜를 입은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들을 마주칠 때면 왜인지 더 든든함을 느끼고는 했다.


가스파르 울리엘 주연의 영화 '생 로랑'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연출, 그러한 능력을 키우는 일에는 구토 나올 만큼의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영화는 이브 생 로랑이 겪었을 내적 고통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보인 영화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담 듀저가 이브가 만든 옷을 입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장면이었다. 그녀는 수줍어했다. 그러면서도 좋아했다. 그런 마담 듀저의 모습을 보며 이브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연기가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브에게서 슬픈 기쁨이라는 감정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가스파르 울리엘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연기였다. 디자이너의 숨은 고통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나도 디자이너처럼 고민했다. 거울을 보며 몇 벌 되지 않는 옷을 이리저리 대보며 멋진 연출을 하기 위해 애썼다. 코트 깃을 올려봤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수줍은 듯 기뻐했다. 그때부터 스스로 만족할만한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나도 뭔가 창작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파리의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에 취해 거리를 거닐고 카메라를 들어 사진 찍었다. 메트로 열차 안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연주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렌즈를 쳐다봤다. 1유로 냈더니 딸랑 이거 주냐며 나를 노려보며 떠나갔지만 말이다.


Saint-Eustache 광장에 가면 조각 작품이 하나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신이 내린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 조각상의 이름은 'Ecoute'였다. 들음. 사람 머리 같은 것이 하나 기울어 진 채로 놓여 있고, 그 옆에 손 하나가 놓여 무언가를 듣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는데 광장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 않은가. 인간이 아닌 조각상 하나가 이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게 말이다. 지금 가면 조금 다른 위치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때 Chatelet-Les halles역이 대공사에 돌입했고 조감도를 보니 광장의 모습이 크게 바뀔 예정이었다. 얼마 전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확인했는데 예상대로 Ecoute의 위치는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무겁게 자리 잡고 앉아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이 진짜 낭만적인 일일까. 그곳은 오늘 하루가 낭만적이지 못하다 생각할 때 찾곤 했던 곳이었다. 단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명이 없는 것에 숨을 불어 넣으려는 것처럼. 희망 없는 꿈을 꾸는 일처럼.

그의 이름은 Henri de Miller였다. 맞다. 조각가는 신적인 존재다. 인간을 위로해 주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존재. 하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신은 우리를 직접적으로 컨트롤하지 않는다. 재능을 통해 우리를 좌절시키고 또 성장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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