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이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꿈과 희망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눠져 있는 것이다.
데이미언 셔젤, 데미안 샤젤인지 아무튼 그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평은 찍는 영화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영화를 세 편 봤다. 위플래쉬, 그리고 라라랜드. 또 하나는 아이폰으로 촬영한 단편 작품이었다. 난 라라랜드를 보면서 위플래쉬와의 공통점을 찾는 일에도 주안점을 뒀다. 듣던 대로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두 편 다 재즈를 소재로 삼은 영화였음에도 말이다. 일단 라라랜드에서는 개런티를 조금 더 지불해야 하는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섭외했다. 연기 실력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개런티가 높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력도 중요하겠지만 외모적인 부분에서 어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느낌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일지 모른다. 이름 하나를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이 저절로 고개 돌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진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J.K. 시몬스는 라라랜드에도 출연했는데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마치 채찍질 후 스트레스 장애를 느낄 것만 같았다. 또 다른 류의 PTSD가 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영화의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주인공 두 명에게 이야기가 집중된다는 공통점 또한 찾을 수 있었다. 조연 배우들이 다시 한 번 겉절이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주인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존 레전드의 이름이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또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공통점은 실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뮤지션, 아티스트가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위플래쉬에서는 그게 찰리 파커였고 라라랜드에서는 존 레전드였다. 위플래쉬에서는 언급만, 라라랜드에서는 얼굴이 나온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존 레전드 등장 이후 영화의 흐름이 크게 전환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하는 고민일지 모른다. 한 번 갔던 길을 가지 않고 똑같은 길을 두 번 타지 않는 것.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 인간 한 명이 모든 영화를 다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 홍상수 감독처럼 아예 질리도록 만드는 방법도 있다. 똑같아 보이는 포스터, 똑같은 배우를 다시 쓰고 또 쓰는 패턴을 보이며 그 안에 새로운 것들을 집어넣는 방식을 쓸 수도 있다. 매니아층에게는 더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 번씩 글을 쓰고 다시 볼 때 스스로 똑같은 패턴이나 방식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해답은 알고 있지 못하다. 찾아나갈 뿐이다. 나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게 너무 질리는 일 같아 밝은 분위기의 영화를 찾았더니 어두컴컴한 레스토랑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마음 흔들림을 느끼게 되었다.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일상이 만나게 되는 지점에서 첫 번째 감동이 찾아왔었다고 믿는다.
이미 난 그가 뛰어난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봤다. 먼저 위플래쉬를 봤다. 그전에 우연히 그가 만든 단편 작품을 보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누군가의 한마디가 내게 작은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위플래쉬를 볼 때는 감독이 재즈 드러머를 꿈꿨다는 소리를 들은 뒤에 봤다. 그의 영화는 항상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보게 된다. 하지만 난 그가 관객들의 시각적 만족을 충족시키는 일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영화는 청각적인 부분도 크게 고려되어야 한다. 아무튼 Damien Chazelle이라는 자에게 영화와 음악이 모두 특별한 세계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 최고의 사랑을 위한 인내와 싸움 그런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가 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LA를 배경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 같았다. 그 프랑스인이 만든 동화를 미국인의 시각으로 잘 해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인가. 그녀가 주인공인데.
엠마 스톤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 그녀의 옆모습을 본 순간 이 여자다 싶었다. '이 사람이다'.
하지만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에서는 좀 징그러운 얼굴 같기도 했다. 영화 초반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오마주한 것이 유일한 특징처럼 보일 정도로 지루했다. 하지만 LA라는 도시를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됐고 길이 넓은 미국 도시의 풍경이 매력적일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곳 길가에 멋진 차를 세우며 압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을 보며 떠나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성들이 성공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는 영화 같았다. 여성들의 승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다. 남자들도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La La Land, 2016/ Damien Chaz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