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2부

episode 3

by 문윤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탬버린 계곡'이라는 영화를 봤다. 찾아보니 그때가 2007년이다. 이라크 출신의 영화감독 이네 살림의 작품이었다. 남포동 극장에서 봤는데 재미있었다. 큰 감동을 받았다거나, 어떠한 극적인 감정을 느꼈다기보다는. 아니다. 그건 감동이었음에 틀림없다. 버스를 타고 중동의 산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감동했다. 그곳의 문화와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저 춤을 추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움직이고 흔들렸다. 이라크인 감독이 만든 영화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언젠가 그곳에 한 번 가보기를 원했다. 막연한 바람이었지만 말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싶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를 보기도 했다. 프랑스어 제목은 'Incendies'였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퀘벡 사람이고, 난 그 영화를 보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피식 웃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퀘벡 사람들의 프랑스어 억양은 프랑스 사람들의 그것과는 꽤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영어 억양과 미국의 영어 억양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그런 걸로 은근히 신경전을 벌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감정이지 않은가.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 그 영화를 보면서 그 지역에 대한 더욱 깊은 동경을 가지게 됐다. 중동의 사람들, 그들의 모습과 언어, 행동들.

아랍어 소리가 들렸다. 그날도 난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향했는데 입구 근처에서 스피커를 통해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부끼는 깃발들을 봤다. 그리고 사람들을 봤다. 광장 한가운데에 중동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난 마침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고 카메라 렌즈는 자연스럽게 그 깃발들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포커스를 맞췄다. 아이들이 보였고, 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 속에 담아냈다.

에펠탑을 보는 일은 파리에 있으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겼다. 그래서 트로카데로 광장에 가는 일이 잦았다. 관광객도 아니면서 그곳에서 에펠탑 사진을 찍고는 했다. 그날 난 그곳에서 중동의 사람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봤다. 늘 찍는 에펠탑의 모습을 조금 다르게 담아낼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인 것 같기도 했다. 슬픈 표정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분노하며 소리 높이는 모습들.

그때 난 그들이 이라크 사람들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국기 모양을 알지 못해 확신은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면 확인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했다. 뜬금없이 동지의식이라는 감정을 일으켜 세웠다. 이라크인들과의 우예를 다질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그들은 이라크 사람들이 아니라 시리아 사람들이었다. 인터넷에서 이라크를 검색해 국기를 확인했지만 광장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달랐다. 레바논은 아닐 것 같았고, 역시 아니었다. 중동의 모든 국가들을 검색해봤다. 그건 시리아 국기였다. 난 시리아 국기를 그때 처음 봤고 시리아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그들이 그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머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된다. 그 후로는 시리아인들의 비극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내 몸 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곧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또 학살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기사들을 보게 된다. 2011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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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슬퍼 보였고, 또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장난치며 광장을 뛰어다닐 뿐이었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가 큰 규모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벽에 그린 낙서 하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대규모의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경찰들이 아이들을 끌고 가 고문을 하자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군대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을 보면서 'You and whose army'라는 곡에 푹 빠졌었다. 라디오헤드의 'Amnesiac' 앨범에 수록된 곡이었다. 주인공 잔느가 탄 버스가 중동의 어느 시골 마을길을 달릴 때 흐르던 음악이었다. 시리아 사태에 대한 실체를 접하면서 난 그 흑백으로 현상된 사진들 위에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를 덧입혔다. 그 나라 사람들의 일을 조금이나마 감정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그날 찍은 사진들 덕분에 시리아 사람들을 알게 됐고 난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 육체적으로 시위 현장에 가담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감정 이입되기 시작했다. 리나와 메히아라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런데 그들 사이에 알마라는 이름의 두 살배기 딸이 하나 있었다.

아무튼 시위는 장소를 옮겨가며 몇 주 간격으로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맞아주었지만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시리아에 있을 때 경찰에 끌려가 고문까지 당했던 사람이었다. 리나가 그 남자에게 나를 소개해 줄 때, 난 아랍어를 하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180도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나를 노려봤다. 나도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시리아 정부가 북한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날의 해프닝이었을 뿐, 몇 번 그렇게 시위에 참여하다 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남자도 더 이상 나를 노려보지 않았고 시위를 즐겼다. 알마와도 더 친해지고 싶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나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세 번째 만났을 때는 나를 알아보고 네 번째 만났을 때는 웃음도 지어줬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 아이를 안아 보았는데, 손에 쥐여준 물병으로 내 얼굴을 밀어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긴 그 중동의 아이가 어디서 나 같은 극동의 아시아인을 마주친 적이 있을까. 아무튼 알마는 내가 건넨 빼빼로도 맛있게 먹었고 그 물병 속에 든 물도 꿀꺽꿀꺽 잘 마셨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직접 알마가 탄 유모차를 밀어주기도 했다. 웅~웅~ 소리를 내며 신나게도 타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중에는 방향 지시까지 내리며 나를 약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알마가 나를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오게 되면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볼까. 헤어지고 난 뒤에는 그런 생각만 들었다. 난 사람들이 시리아 사태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지 않아 그게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이 지나고 또 몇 년이 지나도 시리아에 민주화가 찾아오지 않자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마저 고문 당하고 학살 당하는 현실에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온 세계에 정착시키는 일에 내가 앞장서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시리아 사람들의 희생이 가치 있었기를 바란다. 그저 그때의 사진들을 보며 평화로웠던 순간들을 추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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