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의 사례를 보면 변화하는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들은 나름의 성장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건이 발생했던 논밭 자리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최근에는 데이트 폭력, 교제 살인과도 같은 흉악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매우 드문 사례일지 모른다. 코로나 19로 사망하는 일과 같이 커다란 위협이 되면서도 실제로는 발생할 확률이 매우 적은 일들일지 모른다. 드문 몇몇의 사례를 통해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 안전망이 강화되고 치안 유지의 시스템이 가동된다. 보통의 일상은 평화롭다. 내가 자주 다니던 길에서 어떠한 사고가 목격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사건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골목길들 중 한 곳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모든 골목길들이 우범지역이 된다.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길의 폭은 더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세대 주택일수록 눈이 많고 경비원이 있을 확률도 높아 범죄 억제력은 더 커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의심 역시 커져만 간다. 경찰의 보호도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봤다. 미국처럼 우리도 총기 소유를 허락하게 될까. 당장은 심리전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보인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범죄 스릴러 영화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발전한 것이 있다면 국민 개개인의 수사 능력일 것이다. 네티즌 수사대의 능력은 연예인 열애설에 쓰일 때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올해 4월에 일어난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때도 네티즌 수사대는 활동했다. 그 와중에 괴담이 퍼져 나가며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건은 갈수록 진화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죄를 예측할 수 없다. SF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범죄를 예측해야만 한다. 한국의 범죄 영화를 보다 영향을 끼친 미국 스릴러 영화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에 푹 빠져 있다 '양들의 침묵'이나 '세븐' 같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춘재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에도 미국의 프로파일러들은 조금 다른 해석들을 내놨다. 이춘재의 존재가 밝혀진 후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그들은 이미 그러한 사건들을 접하며 분석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북유럽의 범죄 스릴러를 보기도 했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 등의 자본을 등에 업은 영화였지만 '스노우맨'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다. 그 영화는 평점이 매우 낮은데 사건을 쫓는 것보다 감독의 연출을 쫓는 재미가 있다. 얼음 웅덩이에 빠진 엄마의 볼보 245dl이 아들의 v70 모델로 돌아왔다든지, 그 차가 테슬라를 쫓는 등의 설정이 눈에 띄었다. 아내가 아닌 남편이 욕실에 들어가 우는 설정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대상을 반영한 연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은 범죄 주체가 여성이 아닌 남성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고유정 사건이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남성들이 용의자인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여성들이 물리적인 힘을 가진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범행은 실행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 스스로 그것을 억제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반대로 그것은 범행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총기를 소유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총기 사건을 떠올려봐도, 그럼에도 용의자는 여성이 아닌 남성일 때가 많았다. 경험 때문인 걸까.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진실은 역으로 추적해나가야 찾을 수 있다. 범죄를 수사하는 것보다 인간 심리를 추적하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실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한다. 범죄의 근원은 어디일까. 애석하게도 인간 내면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과 성격이 얼굴을 만들고 곧 그 외형을 드러낼 것이다. 흐릿한 모습으로라도 CCTV에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발로 쫓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