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by 문윤범


"앞에 이 숫자가 남은 자리 숫자에요, 아니면 찬 자리 숫자에요?"

난 그리 물었고 그 여자는 대답한다.

"아, 이건"

난 대화하고 싶었는지도.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간다. 늦은 밤 서면 거리를 떠돌다 그곳으로. 그곳에 있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사람들 속에 그렇게 난.

처음이었다. 극장 맨 앞줄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게. 어차피 다 연인들 뿐일 걸 알았기에, 그들 사이에 끼는 일만큼은 피하자며 옆에 누가 없을 자리를 찾은 것뿐이었다. 그게 맨 앞줄인지 몰랐을 뿐.

내 동그란 머리가 뒤에 앉은 사람들 눈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그래, 고이 접혀 이 영화 보리라.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찌그러져서 난.

이젠 그의 영화에 대한 큰 기대감 같은 것이 없었다. 그랬다면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 그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려 하지도 않았겠지. 엔딩까지 다 알려던 그 마음은 이제 그의 영화에 대한 큰 설렘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마지막 장면의 그 연출은.

이런 저런 리뷰 영상들도 본다. 처음 몇 분 몇 십분이 흐르는 동안 이건 다 본 장면들인데 할 만큼 정말 많은 장면들이 공개된 거였구나 생각한다. 뭘 또 중요한 걸 감추려고, 그 시퀀스로 다다를 때까지도 그런 예상 같은 것은 한 적 없지만. 모든 건 지나고 보면, 결국 난 그가 만든 영화에 감동하고 감격할 것을 알았기에.

그 장면들에서 난 온전히 이 영화 속에 있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그 한 곡을. 그가 그 정도 가수였나 하며. 먼저 찾아보고 들었음에도 또 다르게 다가온다. 이미 들어본 적 있는 노래였음에도. 그렇게 난 그 노래 속에 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또 며칠을, 아니 그 영화 그 거리들을 떠올리고 떠돌 때면 난.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는데..."

극장을 나온 한 여자가 자신의 곁을 걷는 남자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자 그 남자 말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숨은 미소를 짓는다.

내 등 뒤로 앉은 사람들로부터 한숨 소리라도 들려올 듯했다. 조마조마함이었을까, 사람들이 이 긴 시간을 지루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참을성 잃을 만큼 허리 혹은 등이 불편해지면 몸을 틀거나 기울인다. 다리를 반대로 꼬는 등. 그래도 저 장면은 정말 잘 만들지 않았나 하며.

이건 내 친구의 영화도 내 가족의 영화도 아닌데 난 왜 그랬는지. 조용필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완전히 잘못 만들었구나..

김민희가 나온 그 영화를 볼 때도 처음 그랬지. 이제 이 사람 영화도 조금씩. 점점이라는 기분도 없이. 그리고 다시 늘어지는 몸이 되어.

집으로 와서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다. 보고 또 돌려보고 싶었다. 아.. 아직 못 보는구나.

영화는 종교가 아니며 극장은 불교 사찰도 아닌데. 무슨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어떤 작품이었는가, 포제션? 가여운 것들?? 진짜 모르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방금 보고 나온 이 영화도 최고이지 않은가. 때로 울고 싶고 크게 웃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처럼 극장에서도 구현해내고 싶은 연출과 같이. 그들처럼 난. 어느 날은 안제이 주와프스키가 되고 싶고 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같은 연출자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이미 난 그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지 않았던가. 문 제지? 그리고 태양 제지 회사는 무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개인적인 궁금증도 품는다.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듯했던 그 장면은 또



거기서 멈춘다. 모든 걸 편집하려 드는 자처럼 난 붙이거나 잘라낼 뿐. 달은 해가 꾸는 꿈... 그 제목이 인상 깊었던 난, 꼭 가위를 든 자들 같다 생각했던 난 이제 그들을 향한 존경심마저 잃은 후였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때 난 순수한 모습이었으리라. 그리고 기대한다. 영화 보는 일,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



실직, 그건 직업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지도 모른다. 옷 벗는 일, 그걸 벗고 나면 그 일은 이제 누가 하나? 지금 이 삶을 잃는 고통과도 같을지 모른다고.

내 삶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고통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는 건지. 그런 생각 따위를 집어치운 채 울고 웃는다. 애써 읊조린다. 그뿐이었다고.


https://youtu.be/ZGiU2kGgkZM?si=gOXDjUswitUdw8zY


어쩔수가없다, 2025/ 박찬욱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년 9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