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날 돈이 없을 때 엄마가 내 옷 한 벌을 사줬다. 난 둘째라서, 그래도 뭘 입고 다니게는 했던 건지. 내가 고른 건 티아이포맨의 신슐레이트 집업 점퍼. 오래도록 그려온 모양의 옷을 발견한 것이었고 그 후 그 브랜드의 이 옷 저 옷을 봤는데 코트도 내 취향이었고 언젠가 그 옷들을 다 사겠다 마음 먹는다. 그러다 그 디자이너가 떠난 후로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이제 그 상표 옷을 사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 디자이너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내가 인생 코트라며 산 브랜드의 옷 디자이너가 쓴 글을 통해서였다. 안태옥 디자이너의 글 중에서, '박순진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있구요..' 라며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직장을 다닐 때 상사였다고.
일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어떻게 인연이 끊어지지는 않아 그렇게 그 브랜드를 소개하게 됐다며. 디자이너 박순진의 이름을 딴 브랜드, SOONJEANS.
두 디자이너의 옷들은 어떤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내 패션 감수성을 아주 깊이 건드렸는데 과연 어떤 관점 차이로 싸웠을까 궁금하다는 생각도. 아무튼, 내 경험으로도 공통된 무언가를 공유해도 한편으로 서로 많이 다른 게 사람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어쨌든 난 그때 꼭 사고자 했던 그 디자이너의 옷을 이제 내 돈 주고 사게 됐다. 허리가 높고 통이 넓으며 아주 긴.
나도 유행을 거스를 수 없었다. 아니, 그럼에도 난 통이 넓은 바지에 적응할 수 없다 하며 한 치수 작게 구매했더니 허리가. 잘못 산 건가? 난 교환 반품 하는 일이 너무 두려운데 어떡하지, 그럴 시간에 어떻게든 늘려 보자 하며 택을 떼어내버리고.
부산대 온천장을 한 바퀴 돌고 오니 다행히도 조금 여유가 생긴. 마치 내가 제인 버킨이 된 것처럼. 허리가 저까지 올라간 바지를 입은 놈이 걷는 걸 유리 문들을 통해 보니 마치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디자이너가 청바지의 매력에 빠진 건 다름 아닌 제인 버킨 때문이었다고.
20대에는 늘 청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에디 슬리먼이 설계한 옷들에 푹 빠졌던 그때 난 언젠가 디올 정장 한 벌을 맞추겠다 다짐한다.
그 꿈은 너무 멀어 손에 잡히지도 보이지조차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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