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의 예고편을 보면서 노래 두 곡이 들려왔다. 귀에 강한 자극을 줬고 그건 영상 이미지 때문이기도 했다. 한 곡은 아주 잘 아는 노래, 또 한 곡은 처음 듣는 노래. 한 곡은 그린데이의 'Bascket Case'였고 그 음악은 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 만한 노래다. 이제 엠마 스톤을 모르는 영화에 미친 자는 없다. 헐리우드의 배우이자 아름다움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배우. 그 여배우의 입을 통해 불리는 노래라면.
채플 론이라는 가수의 음악이 흐르고 그걸 엠마 스톤이 따라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덕분에 난 그 노래를 기억하게 된다. 떠올리게 되겠지? 이따금 그 배우를 영상 화면을 통해 볼 때면.
난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힘들 때나 쉬울 때나 모두 음악을 통해 더 깊이 빠져들곤 했다. 어려울 거 있어? 할 때는 기쁜 노래를 마음껏 듣고 쉬울 수 없어.. 하면 더 어렵고 힘들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정신을 단련하는 방법이라면 방법인데, 중학생 때 라디오헤드 노래를 들으며 더 깊은 슬픔에 빠지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던 난.
아무튼 채플 론이라는 가수의 노래는 언뜻 내게 가까운 음악이 아닌 듯했음에도. 이건 같이 사는 길이다. 난 음악이 영화를 살리고 소설 또한 살릴 수 있다 믿게 되는데. 그게 유착이 될 수도 있을까?
오래전에는 정경유착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정교유착이 문제 된다. 단지 그런 언어 구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 볼 뿐이다. 헐리우드를 이야기하고 엠마 스톤에 대해 논한다고 해서 다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반복적인 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일지도.
그런 것에 지치고 또 지쳤을 뿐이다. 이젠 내가 다른 누군가를 지치게 할 수도 있는 일. 소설을 완성하는 일은 때로 쉬운데 결국 힘들고야 만다. 한 번씩은 그런 생각도. 음악을 너무 많이 갖다 쓰는 건 아닐까, 허락도 없이. 링크 걸어 놓는 거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나와 조용필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그처럼 내가 음악가를 도울 수도 있는 일. '고추잠자리' 그 노래는 어떤 면에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난 완벽히 창조된 노래라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재창조일지도 모르는데. 늘 갈등은 있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끝내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수 밥 딜런이 그 시절 음악에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생각으로 돌아오고 만다. 보헤미안 랩소디 또한 완벽히 창조된 노래이지만 밥 딜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 부르는 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는 것처럼.
하나 되는 꿈을 꾼다. 늘 그런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난 때로 둘은 그대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말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음악 링크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글을 쓰는 계획도 세워보지만.
이번에는 마음껏 음악을 듣고 싶었다. 글을 읽으며 말이다. 내 글의 가장 중요한 독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음을.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과 상생할 수 없다. 유착하는 길뿐이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글 읽을 사람은 바로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같이 사는 길이 있을지 모른다.
슬퍼도 기뻐도 그건 내 감정이니 그걸 표현해낸 건 다른 누구의 도움이나 개입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스로 극복해내고 이겨낸 것이라면. 음악을 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Good luck, babe!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https://youtu.be/1RKqOmSkGgM?si=TEg4-NIM-_rQSt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