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5인조의 간첩 행각은 몇몇 영화의 모티프가 됐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존 르까레의 소설이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가장 아름다운 첩보 영화였다. 내게는 그랬다. 테일러, 그 글자는 늘 가슴 뛰게 한다. 코드명 테일러, 빌을 연기한 건 콜린 퍼스였다. 영화 속 그가 입고 나온 갈색의 코트 한 벌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빌 헤이든, 그는 배신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울 수 없는 건지 모른다. 그들 모습은 오직 감정을 통해서만 떠올려지기에.
이건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코오롱에서 전개하는 캠브리지 멤버스는 남성복 브랜드다. 아저씨들이 입는 옷, 결혼을 하거나 결혼식에 가야 하는 나이 많은 남자들이 입는 옷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언젠가는 나도 그런 옷을 입어야 할까. 그런 때가 오면 난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고.
그들이 로리엣을 만났을 때 그 옷을 입어야 할 이유를 찾은 듯했다. 로리엣, ROLIAT은 TAILOR를 거꾸로 쓴 이름이다.
난 가끔 괴리를 느끼지만 그건 언제나 내가 추구하는 바다. 매일 격식을 차릴 수는 없어도 내 자세 태도를 바꿀 만한 구조적인 장치가 필요했다. 20대의 내가 찢어진 청바지에 트랙 자켓을 입었다면 30대로 접어들자 검은 코트에 검은 청바지를 입었고, 그리하여 내 정신은 무장되고 난 싸울 준비가 됐음을 느끼고는 했다. 그런 옷들은 모두 노동 현장에서 혹은 운동 시합을 하는 경기장에서 그리고 전장에서 입던 옷들이었다. 그 어느 날은 흰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마주보기를 원하는지도 모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듯 멀리서 그런 옷들을 보고 지나치고 만다. 그 옷이 내 마지막 코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결혼은 더 심한 전쟁이라는 걸 모르는 내가 그냥 지껄이는 것이기도 할테지만. 집에서 축 늘어진 옷을 입은 서로를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렇다고 집에서 차려 입어야 하는 걸까.
가끔 난 내가 큰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바를 위해 그 정도로 돈을 써야 할 처지인가 하고. 난 작가이기에 그런 모습일 필요 있다 정당화하기도. 내겐 그 직업이 상징적이고 날 존재하게 하는 것이므로. 먹고살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난 블루칼라일 뿐이지만. 영국에는 왕이 있고 총리가 있듯, 왕에게 필요한 건 권력보다 권위이듯 난 그를 지켜야만 할 이유가 있다.
케임브리지대는 옥스퍼드대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며 그곳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타난다. 시대를 바꿀 만한 재능들이 크고 자란다. 부모들은 내 자식이 그런 학교로 가기를 원하지만. 멋지고 예쁜 옷을 입히고 싶듯 그들은 내 딸 아들이 그런 모습이기를 원한다. 내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바깥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옷을 입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입을 옷을 선택하는 건 점점 커 가는 그 아이 머릿속 생각이었다. 그건 곧 이념이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그런 간첩도 배출하고 말았다. 킴 필비는 영국에서 활동한 가장 유명한 스파이 중 하나였다. 소련에 온갖 기밀을 팔아넘긴.
그 오래 전 어느 날 영국인들이 입던 옷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 몸에 걸쳐지고 재해석된다. 가끔 피곤하다. 왜 난 아직도 따라가야만 하며 내가 만든 옷을 스스로 입지 못하는지. 그럴 때는 애국심으로 무장하고 만다. 프라다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탓이었을까. 아니, 얼마전 프라다 매장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물어봤다. 혹시 이 코트 있나요? 날 쫓아내지는 않을까 땀이 난 손을 핸드폰을 움켜쥔 채로 들어가서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말을 걸더라고.
내가 그 코트를 살 수 있을 거라 가늠한 것이었을까. 남자로 태어난 난 언제나 그런 착각 속에 산다. 난 환영받을 거야, 날 좋아할 거야, 옷은 태도와 자세를 바꾸지만 실은 본능을 숨기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던.
그냥 캠브리지 멤버스 매장으로 가라..
https://youtu.be/VW-F1H-Nonk?si=667V0smSMkOcM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