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글자들

by 문윤범


얼마 전 온천장에서 술 한 잔을 하며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는데. 아구를 찜이나 탕으로만 먹다 수육으로 먹었고. 그날 아구의 간을 처음 맛본 것이었다. 그토록 유명한 일본의 아구 간 요리를. 몇 십만 원을 주고 앉아 여러 음식을 맛보는 중 한입 맛보게 되는 그 귀중한 요리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그 자리는 너무도 평범했고, 불에 그을린 플라스틱 접시 하나씩을 받아 앞에 두고는. 그럼에도 그 부위는 아주 작기 때문이었다. 서로 한 입씩만 맛보게 되는 것은 같았다. 사람들은 그 한 문장 그 글자를 마주하기 위해 책을 읽는 걸까?

난 아구의 위 곱창이라던가 껍질 살 모든 것이 좋다 생각했었다. 별 맛은 없는, 그렇지만 잘 만들어진 양념과 어울렸을 때 아주 좋은 음식이 된다 믿어왔다. 온천장 그 음식점에서 나온 아구 수육은 자작한 국물에 콩나물이나 푸른 채소 등이 담긴 채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국물 맛을 표현하자면, 그건 마치 닭 국물과 같았다고 할까? 이 표현은 진짜 닭이라는 걸 잡아 밀가루를 입혀 튀기면 그게 가장 맛있다는 걸 뜻하는지도.

그날 난 어느 정도 술에 취했다. 곰장어도 먹고 일본식 술집에서 중국식으로 튀겨져 나온 닭 튀김도 먹고 나중에는 탕수육에 짜장면까지 먹었다. 그들은 말한다. 난 이런 음식이 좋다 이런 맛이 좋다 그 집이 이런 게 괜찮다 그런 말들을 한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각자 나름의 미식관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고 음식 맛에 대해 더 다양한 표현 또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 그 작가 글 어때요? 그 문장은 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글을 읽고 느낄 줄 안다면 그들은 모두 글에 대해 평할 수 있다. 세상에는 심사위원 평론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왜 안성재 셰프의 말이 기준점이 돼야 하지? 보통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짐작 정도만 하는 것을 그는 말하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훨씬 더 많은 시간 음식을 했고 요리해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맛의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다 똑같다 말한다. 난 그렇다고. 차이만이 있을 뿐. 그 차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서로 모를 뿐이라고.

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을 받는 식당들의 공통점에 대해 난 말한 적 있었다. 다 똑같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아주 큰 접시에 조그마하게 음식이 올라간 게 공통점처럼 보였다고. 먹어보지는 않아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은 대게 프랑스 요리의 문법을 따른다 그런 문장 그런 글자를 읽게 되고. 난 읽고 싶었다. 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난 이제 절대로 공모전 같은 것에는 도전하지 않을 결심 같은 것을 하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게 너무 분명한 것 같다 알게 됐으면서 다시 또 도전하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주류문학이란 격식을 차리고 앉아 먹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음식이다. 문단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고급 요리를 내놓는 방법 뿐이었다.

그런 레스토랑은 망하기 쉽다는 말을 들었다. 금방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너무 비싸서 그 돈 주고 사 먹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격식을 갖추다 보니 그 비용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해서라는 말을. 원가라는 게 없는 문학은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은 건 글은 여전히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 값이 들고 전기비가 발생하고 다른 인건비도 들겠지만. 그 글자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글 쓰는 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 돈도 있지만.

인간이 아닌 머리 뇌가 그런 일을 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이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할지 모른다. 그런 날이 오면 말이다.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맛의 균형이 아니었다. 그 입들일지도. 그 입 안에 들어 꿈틀대는 혓바닥일지 모른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다름 아닌 내 생각과 마음.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손가락들이 아니라 지금 내 감정이다. 가끔 난 키보드를 두드리다 내가 분노로 가득 찬 인간이라는 걸 느낀다. 그런 후 내가 쓴 글을 보고 있을 때 가끔 슬프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웃음도 터뜨릴 듯이. 이 새끼 완전 미친 새끼 같은데...

와인과 함께. 프랑스 사람들이 멋진 음식을 즐길 때 꼭 빼놓지 않는 것이었다. 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음악은 어떤 경우에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난 이런 음악 들으면서 썼다 꼭 드러내고 싶은 건 이 문화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죽는 날까지 즐기고 싶은 것이다.

내게 글쓰기는 일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건 일이 됐고.

요즘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는 책장이 있고 몇 권의 책들이 꽂혀 있다. 잘 알려진 좋은 괜찮은 소설 에세이 책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본다. 일어나 다가가 그것들에 손을 뻗고 싶지만, 내가 작가인데 꼭 그래야 하나? 멈추고. 그런 다음 폰을 들어 데이터를 켜고 내 이름을 검색한다. 내 글 내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에는 눈물이라도 한 방울 떨어트릴 듯이. 이 새끼 이거 완전 또라이 같은데.

커피는 프랑스 사람들이 식사 후 마시던 것. 아님 그냥 담배 한 대 피우며 입에 갖다 대던 것이었다. 혼자 커피 마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 나라에서도 이제 그렇다. 카페 만들어놓고 대부분 금연구역이라니 그건 좀 아닌 듯하지만 더 좋은 일이 있었다. 카페에서 난 내가 쓴 글을 읽고는 한다. 최고의 요리사가 된 심정으로. 저런 책들 이제 넘겨 읽지 않아도 된다고.

이 일로 돈을 벌려면 더 자세히 봐야 하는 걸까? 더 연구하고 탐구해야 하는 것일까? 난 그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가끔씩이라도 조금씩은 읽고는 했는데. 왜 저런 글을 쓰는 걸까, 쓰게 된 걸까 지금은 그런 생각도. 그 작은 부분들에서 진심 또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면 당신은. 그 다음 단계는 이제 내가 쓰는 것이다.

살며 내가 가장 많이 읽어온 건 정작 멋대가리 없는 신문 기사들이었다. 그건 아직도 쓰는 것보다 읽는 편이 나은 듯하다. 요리란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요리에는 레시피가 있듯 그건 얼마든지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뻔할지언정 그건 분명 내 것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팩트가 있고 사실이라는 게 있다면. 허구의 세계를 꾸미면서도 통하는 방식이 있고 방법이 있었다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신문 언론의 기자가 아니기에. 소설은 글 읽는 사람의 상상력이 더해져야만 하는 그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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