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kF3oxziUI4?si=EHQg7mfzsbZry2qG
설, 그리고 추석의 고속도로는 차들이 멈춘다. 멈출 듯이 느리게 움직인다. 슝슝 달리던 차들이 모두 숨을 죽인 듯이 멈춰 있을 때.
명절이 되면 힘든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 그리고 전 부치던 사람들과 그들이 그 끝에서 던져 놓는 언어들에 신경 곤두세우게 되던 아이들.
"올해 대학교 들어가제?"
혹은 취업 준비는...
모두 힘들어서 그런 것 아니었을까?
명절 연휴가 업무에 영향을 미쳐 그래서 힘든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노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수록 더 빠른 속력을 요구하며 더 미친듯이 달릴 체력이 요구되지만 모두 한계를 둔다. 한계를 두지 않는 삶은, 그러나 그 끝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어도 이상하지는 않은 일. 가장 즐거운 휴일을 위해,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며칠을 위해 그런 꿈도 꾸는 사람들. 함께 모여 음식 먹는 일, 밥 먹는 일을.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기도 했던, 다 먹고 살려 그러는 것이라던.
다시 태어나면 운동선수가 되고픈 난 언제나 스포츠 스타들을 동경했는데 가끔은 실망스러운 소식도 들려온다. 혹은 얘기치못한 일들에 좌절하며 막막해하기도 하는 등 아름답지만은 않다. 난 미드필더들을 좋아했다.
축구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공을 가진 자들, 그들이 지킨 공이, 그리고 그들이 뿌린 공이 승패를 결정짓기도 했던 게임. 위험지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그들이었음에도 그들이 약할 때 그건 결국 경기력으로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골키퍼의 외로움, 또는 수비수들의 위태로움. 그럼에도 난 공격수들이 가장 힘들다는 것 또한 알 것 같다. 골을 넣지 못할 때 시달리고 위협받게 되는 그들의 입지는 한 명의 선수로서 그건 곧바로 생과 연결돼있었다. 누구도 뒷걸음질 치는 공격수는 두지 않으려 했으니까.
명절날 친척들이 모이거나 하면 자주 하는 이야기는 정치 또는 스포츠 이야기였다. 어린 난 늘 그런 상상을 했던 듯하다. 텔레비전 속 저 빛나는 스타처럼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되리라고.
가족이 뭐라고, 한민족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손흥민이 뛰기 때문에 토트넘 경기를 봐야 한다는 그 논리에 거부감을 느낀 난 나중에는 아예 그런 말도 했는데. 난 맨유가 이기길 바란다고. 졌지만.
작년이었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토트넘과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맞붙어 패하고 만다. 아직 손흥민이 있을 때, 토트넘이라는 팀에 아직 그 선수가 남아 있었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박지성이 뛰어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더 많은 응원을 받은 팀이기도 했다. 난 그런 이유가 아니었으니까. 그가 뛰어 그 팀을 응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나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을 때, 그런 막연한 꿈을 꿀 즈음이었던가.
시간이 더 지나 지네딘 지단 같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선수도 봤고 그의 플레이도 목격했지만 언제나 그 팀을 응원했다. 비록 레알 마드리드를 이길 수는 없었어도, 지구를 지킬 정도로 강한 팀은 아니었음에도 그들을 사랑했다. 조그마한 집 작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라 큰 별이 되고자 했던 꿈은 더 넓은 세계에서 그러리라 다짐하게 만들었는데.
그 노래 소리들이 들려와,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들에 다시 그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러다 난 뜻하지 않게 지네딘 지단의 나라에 가 3년 머물게 되는 아이러니 한 삶 속에 있었지만.
그 삶은 어떨까? 한 번쯤 궁금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축구 선수들 혹은 스포츠 스타들의 삶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건 결국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야생의 들판 위에 있는 일과 같은 것이었지만.
두렵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이러다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끝내 외면하게 될 꿈일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희망차다.
'집으로 돌아가야 해.'
그런데 왜 그게 두려운 일이었던지.
https://youtube.com/shorts/6Aq6bvvAlXs?si=_cWRvZQdpfI6KJ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