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는 건 돼도 늘리는 건 안돼."
그 아저씨가 내게 한 말. 아빠 친구가. 술 친구, 술을 친구로 둔 사람들인지. 아빠는. 우리 동네 옷 수선 가게 아저씨가 내게 했던 말.
어느 날 내 찢어진 검정 청바지를 검은 천을 덧대고 꿰매 새 옷으로 만든. 그건 또 다른 창조였다. 입음으로써, 그리고 걸음으로.
화가들이 관심을 보인 작품, 아니 청바지였지 하며. 이젠 입지 않는 바지가 됐지만. 허리가 작아 입기 힘들기도 하다. 이젠 별로 살찌지도 않는데, 난 큰 걸까? 진짜 그런 건지..
다 큰 키는 더 늘릴 수 없듯 두 다리를 감싼 그 천 또한 마찬가지다. 줄일 수도 없다. 사실 그건 일종의 마법 같은 것. 기술이란 그렇다. 그랬더라고.
잘라내버리기. 그런 다음 박음질을 해 모양 만들기.
그림 그리기에 앞서 해야할 일은 구도 잡기. 먼저 대상이 필요했고. 벗은 여자 한 명이 내 두 눈 앞에 있었다. 그때 몇 개월, 아니 몇 주 베르사유 미술대를 다니는 동안 경험한 일이었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림 그리더라고.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거였는지. 뭐 남자는 몇 명 없었기도 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실전이잖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몇 시간을 그려댔는데 그때 난 내가 이런 일에 재능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연필 다루는 기술도 없고, 어디서 본 건 있는데 그래도 그걸 내 방식대로 나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 그건 꽤 동양적인 그림이 됐다. 백인 여자를 그렸는데 말이다. 연필로는 갈색 머리를 그려 색칠할 수 없었으니.
그게 과연 기술일까? 몇 주, 아니 며칠 동안이라도 미술을 공부하며, 그런 뒤 한참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는 것이다. 기술은 뭐고 예술은 또 뭐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bear bear..
누가 내 그림에 손을 댄 걸까?
내 삶 하루가 찢기고 부서지는 기분이 들땐 그런 말을 하고. 뭐하는 거지? 누가 내 일에 관여하거나 간섭할 때면 그런 감정이 치밀어 오르곤 했다. 미친 건가??
수술해야 할 성격이 되고 말았다. 점점, 나도 이젠. 수선하거나 고쳐야 할 것이 됐다. 내가 꾼 꿈은, 내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며.
그것도 작품이 될 수 있다면서. 꿈은 원래 꿈이지 않았던가 하며.
절개하지 않아도 될 인생, 절제하는 삶. 그걸 지켜야만 한다고. 벗은 그 여자를 눈앞에 두고 눈 감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기만큼이나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그들 뼈를 보고 싶어. 내 피부를 건드리거나 내 살을 찢으려 할 때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이다. 그건 본능이다. 본능일까? 알 수 없어도 느끼는 건 있듯. 사람들은 왜 본능 감각에 충실하지 않고 똑똑해지려만 하는 걸까? 아니, 왜 똑똑해보이려 안간힘을 쓰는지.
무식해보이는 일에는 자존심 상해 하면서도 무지해보이는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보통의 사람들 모습이었다. 난 좀 무식한 편. 그래, 무지한 니들보단 낫다고.
그 바지를 들고 그 가게를 찾은 이유는. 그게 맞는 것 같아서. 그건 분명 감각적 선택이었음을. 틀릴 때도 있지만. 배울 수 있는 자들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배우고자 하는 마음자세를 가진 것이었다. 그래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 그건 남자 정신 똑바로 차리기가 홀딱 벗는 그 여자 일보다 힘든 일인 것과 같을지도 모르지만.
아저씨는 내게 가르침을 줬다. 짐작했음에도. 이건 더 늘릴 수 없을 것 같다 짐작했음에도 조금 늘렸다.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삶, 그렇지만 아직 꿈꾸는 자들.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그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이루어냈다 믿는 삶. 인생이 절망의 연속이라면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않았던가.
큰 종이 울린다. 그곳으로 향한다. 발걸음을 따라. 아니, 커다란 종 하나를 그린 뒤에 울리도록 한다. 소리 나도록 한다. 바람이 불어온다. 그렇게 흔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