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있으면 그 도시의 사람들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지하철은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10대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20대에 친구들과 서울을 여행했을 때 지하철이 조용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돌아와보니 부산 지하철도 어느샌가 조용해져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유럽의 대도시들은 또 다른 풍경일 것이다. 지하철 안에는 수많은 인종들이 섞여 있다. 런던은 가본 적이 없지만 파리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프라하의 지하철은 다소 삭막했다. 삭막함보다는 차분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곳 사람들은 조용했다. 행패나 난동을 부릴 사람조차 없어 보였다. 독일의 지하철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프라하로 가는 길에 독일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른 일이 있지만 젊은 애들이 주차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특이점이 없었다. 단 몇 분의 머묾으로 느낄 수 있는 성격 같은 것은 없었다. 파리에서 만난 한 독일인 여자에게 닌텐도 테니스 게임을 완패했던 걸 생각하면 독일의 생활 체육 수준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선호하는 자리는 반대편 문짝 앞이다. 등을 기대면 위험하기에 접촉 수준으로 기대놓고 있는다. 그런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앞으로 걸어와 코앞에서 마주 보고 서는 사람이다. 등을 돌리면 조금 낫지만 뚱뚱한 가방을 뒤로 메고 있으면 그것도 곤욕스럽다. 때론 앉아가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서서 가는 것이 편하다. 그 말은 옆 사람과 어깨를 대고 앉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행은 그 순간을 낭만적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생활은 그러한 일상들을 아름답게 꾸미지 못한다. 일상을 순간으로 바꿀 때 감성적일 수 있다. 생활을 여행으로 둔갑시킬 때 보다 감각적인 생각들을 할 수 있다. 지하철은 내게 설레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두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의 눈이 무섭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있으면 그들의 어둠을 느끼게 된다. 밝은 조명 아래라 더욱 분명해진다. 그곳 한구석에 서 있는 나를 본다.
내가 어릴 때는 지하철은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는 오래도록 전화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40대가 된 지금은. 언젠가는 이곳도 수많은 인종들로 뒤섞여 다시 시끌벅적해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