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의 영화 '시리어스 맨'를 통해 유대교도들의 삶을 조금 더 일상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삶 자체가 험난했기에 영화도 대부분 그들이 핍박 받았던 과거나 반대로 아랍 국가들과의 분쟁 또는 전쟁을 통해 드러낸 극단적 면모를 그린 이야기가 많았다. 나 또한 파리에서 유대인들이 가진 폐쇄성을 경험했기에 그런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사관의 경비가 유독 삼엄했던 것은 국가적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고, 극심한 분쟁으로 인해 종교시설이나 문화시설을 철저하게 보호하려 했던 것 역시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심각한 상황들에 둘러싸인 주인공은 랍비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정말 재밌었던 건 그를 랍비에게 찾아가도록 만든 사람들 중 하나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낙제점을 받은 한국인 학생이 항의를 하기 위해 교수실을 찾고, 급기야 그는 교수에게 뇌물을 찔러 넣기에 이른다. 주인공이 학생의 아버지를 만나 당신 나라에서는 학점을 받기 위해 뇌물을 주느냐는 말에 나는 너무 놀랐다. 코엔 형제는 그 시절의 한국 문화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미국인인 그들이 실제로 한국인 이민자들과 부대껴 살며 얻은 경험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뜨끔했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그들의 연출에 큰 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우리의 뇌물 문화가 유대인 사회가 가진 폐쇄성과 다를 바는 없었던 것이다.
"이건 문화 충돌이에요."
한국인 아버지로 출연한 스티브 박의 대사에 끝내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짓고 만다.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일상적인 심각함을 안고 산다. 코엔 형제의 영화가 재밌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여러 사람의 감정 또는 이해관계가 서로 부딪히는 과정을 과장 없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아낸다는 점이다. 유대교 가정에서 자라나는 청소년 남매가 서랍에 넣어둔 20달러를 훔쳐 간 문제로 서로 욕하며 때리고 싸우는 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다. 물론 심각하지는 않고 애들 다툼 정도로 그려진다. 기껏 랍비를 찾아가 상담을 하는데 자신보다 나이 어린 랍비를 만나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는 남자. 이런 게 인생이에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도의 말을 들으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어떻게 심각하지 않을 수 있나. 모든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만 가는데 말이다.
길을 찾으려면 찾을수록 모두 더 심각해진다. 산에 살면 철학자가 될지도 모른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면 인생은 참 편하다. 아무거나 짓고 세우고 깔고 포장하면 인생은 즐겁다. 뒷감당이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러한 자막이 뜬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 라시의 말이다. Rashi. 그는 중세 프랑스의 랍비 학자다. 그와는 반대로 별 심각함 없이 살아가는 듯한, 집을 구하지도 못해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동생. 사고까지 쳐 대신 변호사비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
그런 이야기들만 이어지다 끝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그들의 삶을 조금 더 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코엔 형제 영화를 보면 유대인들 중에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공동체의 특성은 공유하는 삶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치유할 힘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가족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작 가족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남자.
그렇다고 친구가 많지도 않은. 그래도 영화가 있으니까. 나는 소설. 누군가는 시 또 어떤 사람은 낙서. 그런 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지나칠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다. 명쾌한 해답 같은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찍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A Serious Man, 2009/ Coen Br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