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드가 없어 넷플릭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꼭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이 왓챠를 통해 공개되고 그곳에서는 핸드폰 결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한숨 놓았다. 덕분에 다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리틀 드러머 걸이 또 보고 싶어 다시 한 달 결제를 했다. 덕분에 다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지금 느끼는 것은 확실히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달 만 원 돈으로 수십 편의 영화를 즐긴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개이득이지 않은가. 1+1 행사로 한 달을 더 이용하게 됐는데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라면, 내게도 카드가 생기고 그것으로 요금을 결제할 수 있다면 난 곧바로 넷플릭스로 갈아탈듯하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싶은 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고화질 기준 넷플릭스 한 달 요금이 대충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비슷한 가격으로 안다. 왓챠도 그렇다. 물론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것과 방구석에서 혼자 좋은 영화를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무튼 이 기간이 끝나면 허전해질 것을 안다. 영화는 계속해서 쏟아진다. 영화는 기름과도 같은 것이다. 넷플릭스는 유전이다. 또 다른 형태의 소비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 아니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왓챠에는 결정적으로 없는 영화가 몇 편 있지만 덕분에 다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다. 코엔 형제 영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정말 재밌게 봤지만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딱히 끌리는 다른 영화는 없었다. 하지만 '인사이드 르윈'을 보지 않았다면 이 몇주 간의 내 삶은 크게 달랐을 테다. '칠드런 오브 맨'을 보게 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홀리 모터스'도 감동적이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새로운 강력한 동기를 가지게 한다. '문 라이트'와 '라라랜드', '위플래쉬'도 봤다. 그리고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 '유전'을 봤다. 미드소마는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영화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진심으로 욕했는데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두려움에 적응할 때 그러한 감정을 느낀 장소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을.
보기 싫었지만 결국 '베이비 드라이버'도 봤고 '범죄의 재구성'을 다시 소환하게 됐다. 한국 영화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낄 듯했고 오래된 미국 자동차들의 매력에 또 한 번 이끌리게 됐다. '인히이런트 바이스'는 아직 끝을 못 봤는데 대신에 토머스 핀천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됐고 두 영화에서 찾은 특징들을 결합시키는 작업도 구상해 보게 된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또 무엇으로 채우냐 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에는 한 두시간의 히든 타임이 있다. 깊숙이 들어가 찾아야 발견할 수 있는 숨겨진 공간 하나가 있다. 다락방 같은 곳일지 모른다. 혹은 지하실 같은 공간일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구조물을 통해 오르거나 내려가야 하는 곳이다. 그것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볼 때 흔히 말하는 창의성이라는 게 꿈틀거릴지 모른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하려는 영화들에 이끌리고는 한다. 이번 왓챠 결제 기간 동안 본 최고의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인사이드 르윈'을 말하겠다. 미국이라는 국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Inside Llewyn Davi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