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이용 기간 만료를 며칠 앞두고 '미나리'가 올라왔다. 재밌게 봤다. 두 달 동안 미국 영화를 엄청 봤는데 마지막에는 한국 영화를 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미나리는 미국 영화였다. 하지만 한국의 배우들이 나오고 이 나라의 감성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네티즌 평에 이러한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봤다.
메시지는 차치하고 감각적으로(시각, 청각) 황홀했다. 영화는 가능하고, 소설은 불가능한 것. 영화는 도달할 수 있고, 소설은 도달할 수 없는 것. 영화는 체험시킬 수 있고, 소설은 체험시킬 수 없는 것. 더 확장하면 소설 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이라는 영역에서, 그 수단들이 지닌 한계 탓에 필연적으로 결여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한데 결부해 체험시켜 줄 수 있는 예술적 수단이 영화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체험자의 체험적인 차원에서 그 느낌이 가장 강렬한 것이면서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미나리는 더할 나위 없이 영화적이었고 예술적이었다. 최근 개봉한 어떤 국내작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가 평하길, 메시지가 영화를 구하진 못한다고 했다. 미나리에는 메시지를 초월한 그것이 있었고, 때문에 영화가 구해졌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런데 나는 소설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소설을 읽을 때는 청각적인 자극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책장 넘기는 소리처럼 듣기 좋은 것도 없다. 그리고 소설 역시 시각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일지 모른다. 문명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독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책 읽는 행위가 지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왜냐면 글자는 그림인데 하나하나 의미를 가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인물이 등장하고 줄거리도 있어 흥미롭다. 그렇다고 그림에는 의미가 없냐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개인적으로는 제1의 예술을 미술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문학은 화투 놀이 같은 것이다. 마니리에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장면이 있었다. 화투를 하면서 욕도 하는데 나중에 손자 데이빗이 그걸 써먹는 장면이 나온다. 예술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은 모두 공통된 것이다.
미나리의 아이들이 그랬듯 문학 역시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놀이 같은 것이다. 다만 어떤 것을 꺼내들고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놀라거나 그렇지 않는 것뿐이다. 나는 영어보다 한글의 예술적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동그라미 네모를 사용하기도 하는 한글은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중국 문자에는 동그라미가 없고 그래서 매우 날카롭거나 딱딱하다. '일대종사'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 포스터가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아랍 문자는 내게 무척 난해한 예술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라는 체험이 가지는 특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소설을 통해 체험하는 것과는 약간의, 아니 아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이 그려 놓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안을 보려 한다. 소설은 반대다. 독자들은 이미 안으로 들어와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뒤집힐 수 있다.
영화 해석에도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듯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도 떠올리는 이미지가 서로 다르다. 그녀가 산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하려면 머리 길이가 어느 정도 되고 옷은 무엇을 입고 있고 그런 이야기들을 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대로 그 모습을 떠올린다. 그녀는 현재 슬프다. 그렇다면 자신이 머릿속에 입력시켜 놓은 슬픈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다. 많은 영화감독들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지 모른다.
미나리는 좋은 영화였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TV 속에서 한국 가요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어디인지를 알았고, 그 환경을 이미 체험했기에 TV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가요의 이상함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무척 강렬했다고 생각한다. 미나리. 한국 사람에게도 미국 사람에게도 편히 읽힐 수 있는 단어일지 몰랐다. 동시에 순수 한글이라는 점에서 더 강한 특색이 있었다. 소설 역시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