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에서는 멋진 대사가 많았다. 전투 장면도 있었지만 이판 최명길과 예판 김상헌의 정치적 대결이 주를 이뤘다. 김훈 작가의 원작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못지 않게 조선의 왕과 청나라 군주 사이의 대립 아닌 대립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배우 송영창과 인조를 연기한 박해일의 콤비(?) 플레이도 또 다른 재미 중에 하나다. 무엇보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썰전을 주고 받는 사이 등장하는 청나라 칸의 존재감이 무척 컸다. 말이 중심이 되는 이 영화에서 만주어는 큰 임팩트를 남긴다. 영어가 공용어인 시대에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언어도 있다. 만주어는 문법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에 가깝다 들었다. 그런 식으로 들리기도 했다. 중국도 일본도 아닌 강대국이 우리 주위에 또 하나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신비로운 일이다. 두려움이 신비로움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 넘어서지 못할 장벽과도 같은 존재를 만나 굴복하고야 말 때 사람들은 경외심을 표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미묘했던 부분이 바로 청나라 군주가 악역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었다. 캐릭터 하나를 일방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으며 선과 악을 따로 구분 짓지 않았다. 허성태 배우가 연기한 용골대는 그냥 아주 맛깔나는 캐릭터였다.
상대적으로 청나라 병사들의 체격이 더 컸고 그런 배우들을 섭외해 기용한 듯하다. 내가 아는 오랑캐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지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조선의 왕은 가장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작품 속에서는 내내 불안해하며 신하들에 크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많은 명대사 속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 하나를 꼽으라면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은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먼저 영화 초반부에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산은 가파르고 성은 단단해보인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 노비 출신으로 청나라로 적을 옮긴 정명수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허나 조선은 성 안이 허술합니다. 그곳은 곧 적의 아가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병헌 김윤석 두 배우의 명연기는 조선에도 희망이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동시에 나루터 아이 나루를 통해 미래를 본다. 대장장이의 대장장이질을 구경하는 소녀의 표정이 참 천진난만했다. 자신이 곧 그것을 들어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무기를 말이다.
그 아이가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 건 유일한 피붙이였던 할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사 이치라고 한다면 어린아이 한 명이 등장할 때 늙은 사람 한 명은 퇴장하는 것이다. 병사들과 신하들은 뜨거웠다. 소설은 글자를 남기고 영화는 장면들을 남긴다. 시절은 시대를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남한산성, 2017/ 황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