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by 문윤범


나는 다섯 살 때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약간 추억 같은 것이 됐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그때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가끔 떠오를 때도 있다. 수술실과 의사 선생님의 얼굴, 병원 밥 냄새.

수술이 잘 돼 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유치원도 국민학교도 모두 잘 다녔다. 대신 격렬하게 뛰면 심장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체력장은 늘 꼴찌였다. 얼마 전에 '미나리'를 봤는데 데이빗을 보며 꼭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데이빗 할머니의 말대로 뛴다고 해서 크게 무리가 오고 하는 것은 없었다. 나름 이를 갈아 중학교 고등학교 체력장에서는 어느 정도 만회했다. 자라면서 목욕탕에 가는 횟수도 줄어 들었고 점점 그 병을 잊게 됐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진단서 문제로 수술 기록지를 찾으러 갔다 내 병을 치료해 준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그때 난 가슴이 조금 파인 브이넥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흉터가 살짝 드러났다. 내게 대견하다 말해줄 줄 알았는데, 어떤 생각이었는지 선생님은 흉터를 잠깐 보더니 시선을 피해버렸다.

어릴 때는 그 흉터를 지우고 싶었다. 사내 아이들끼리 놀고 웃통 벗고 씻을 때도 나는 머뭇거렸다. 친구들과 목욕탕 가는 것도 꺼려했다. 하지만 20대가 되어 용기를 얻었다. 심지어 장신구처럼 그 흉터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 시기 나는 브이넥 셔츠를 자주 입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몸에 칼 대는 게 좋은 걸 줄 알아요?"

어디서 어떤 식으로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수술 안해도 되요. 시간 지나면 사라집니다."

화를 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였다. 그때 난 수술의 가해성과 피해성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내게 한 말은 아니었고,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였지만 그 남자의 목소리 톤과 말들이 계속 잊히지를 않았다.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은 내 흉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그만 가슴에다 메스를 갖다 댔는데 그 흉터가 지 덩치만큼이나 자라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떠한 감정이라도 일었던 걸까.

나는 오랫동안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러한 감정을 겪으며 자란다고 생각하게 됐다. 손가락에 난 상처 하나로도 피해 의식을 느낄 수 있다. 축구를 하다 다리 한 번 걸어 넘어뜨린 것으로도 가해 의식을 경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모양일지 모른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상처가 생기면 자꾸 그것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일로 난 의사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 만난 시리아 친구들이 외과 전공의이기도 했는데 내 흉터를 익숙한 듯 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들 역시 누군가를 가해한 경험이 있었던 걸까. 나는 언제까지 피해 의식에 젖어 있을 텐가. 얼마 전에 영화 '티탄'을 봤다. 감독의 부모님이 모두 의사라고 하는데 그런 영향인지 매우 난해한 영화를 한 편 만들어놓은 것을 봤다. 하지만 공감도 됐다.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말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다시 그때 생각이 났던 것뿐이다. 머리에 티타늄을 심고 살든, 가슴에 지 가죽으로 된 이상한 장신구를 달고 다니든.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는 것. 그러한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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