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아'
언젠가 친구의 딸이 TV 속 고릴라를 보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봤다. 예쁘다!
맞다. 고릴라는 예쁜 것이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의 딸에게 따지며 그런 말을 했다. 니는 뭐 전부 예쁘다고 하노.
그 아이는 표현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예쁨도 못생김도 놀람도 충격적임도 모두 예쁘다로 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걸까. 고릴라를 닮은 나는 이때다 싶어 맞장구를 치며 맞다! 예쁜 거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충격이었다. 나는 나를 인간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놀랐다. 내가 영장목에 속한 짐승이라고? 나는 어쩌면 조금 덜 진화한 인간일지 몰랐다. 때론 나보다 진화한 인간들을 보며 시기하기도 했다. 거울 속 고릴라는 우울해져만 갔다. 어느 날은 그 얼굴 위로 안경이 씌워졌다. 곧바로 벗었다. 못 볼 걸 봤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어느 날 삼정타워의 한 안경점에서 안경 하나를 껴보고는 놀랐다. 그 사이 내 얼굴이 진화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다. 중요한 건 고릴라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한마디에 나는 약간 울컥했다. 친구가 분위기를 조금 깼지만 말이다. 친구 맞나 싶었다. 친구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족은 아니었으니까.
영장목 아래에도 여러 카테고리들이 있을 것이며 그렇게 갈래 갈래 나뉘면서도 또 가족과 친구로 분류된다. 화장실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다 옆모습을 보다 아직도 가끔씩 놀란다. 그러면 표정을 새로 만든다. 거울을 보며 사람 같은 얼굴을 하려 한다. 그런 표정을 짓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진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장목과는 이별을 고하는 듯했다. 굿바이 투 로맨스..
로마적 낭만에 안녕을 고한다는 뜻일까. 나는 더 혁신적인 도시, 세계로 향한다. 로마인들이 만든 것 같은 이 세계를 떠나려 한다. 빌딩 저 높은 곳 그 너머에 있는 세계로. 안녕, 사랑의 기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