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를 만나다 1부

episode 2

by 문윤범


루앙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일이 꼬여버렸다. 그때 난 내가 생각했던 계획들이 전혀 내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루앙에 일주일 정도를 머물다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난 아마도 파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무언가 내 계획대로 되어간다는 생각이 무의식 아주 깊숙한 곳에서 피어 오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amelie1.jpg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TV도 없다.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시트에서 냄새가 났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두렵고 침대 위에 다시 눕는 것도 겁이 났다. 바닥으로 내려와 앉아 침대 옆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난 호텔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걸어 내려와 좁은 로비를 지나, 지나려는데 로비 데스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내게 인사했다.

"Bonjour"

누군가가 내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로비 데스크에 있던 남자에게서 들려온 소리 같았다. 그는 알제리인처럼 보였다. 나는 그 남자를 쳐다봤다.

"Bonjour"

나는 따라 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그도 미소 지었다. 거짓말같이, 그 순간 이후 파리의 모든 것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스스로 두려움에 둘러싸이지 않았고, 난 코트 깃을 세운 채로 마치 프랑스 사람들처럼 그 춥고 건조한 거리들을 걸었다.

루앙에서 돌아온 난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집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 주 동안 호텔과 한인 민박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 파리에서 20유로, 30유로 정도 하는 호텔을 찾기란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파리에 도착한 첫날 깨달았다. 하지만 마침내 발견하게 되었다. 조금 더 으슥하고 우중충한 길을 걷다 보니 그런 호텔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어떤 길을 걸어도 내 걸음을 비추는 불빛이 없다 느꼈다. 그 생각은 끝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다시 막다른 골목 벽에 부딪힐 것만 같았다. 그 끝에서 마주친 호텔이었다. 30유로도 하지 않는 가격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 호텔의 침대 시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더 이상 머물기가 힘들었다.

다음 날도 좁고 어두운 골목길들을 걸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파리의 좁은 길들을 따라 걸었다. 붉은색 조명등으로 비춰진 H O T E L이라는 글자를 본다. 그 희미한 적색의 조명등 앞에 서 있다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그 남자는 호텔 주인에게 가격이 얼마냐 묻고 주인이 얼마라 대답하기도 전에 30유로가 넘으면 자신은 이곳에 묵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파리에서 묵게 된 세 번째 호텔이었다.

그 호텔은 차라리 여관방에 가까웠다. 주인 아저씨는 황당해했다. 가격을 정하는 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랬다. 하지만 더 이상 걷지 못하겠는데 어쩌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난 마치 이곳에서 떠날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버텼다. 며칠 사이 난 좀 뻔뻔해져 있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아저씨는 Nord 냐 Sud 냐 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방식의 질문이었다.

“Sud요.”

그 뒤로는 그 질문이 익숙해졌다.

아저씨는 25유로에 하룻밤을 묵게 해줬다. 여전히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열쇠를 건넨 뒤 다시 낡은 텔레비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행히 그 호텔의 침대 시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는데 낡고 으스스한 분위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꽃무늬로 장식된 벽은 그 무늬들이 희미해져 화사함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한쪽 벽에는 오래된 장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문틈 사이로 책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봤다. 커다란 책상으로 막아 놓아 그것을 열어보지는 못했지만 책들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깊은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웠을 때는 옆방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남자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장기 투숙자처럼 보였는데 보통의 프랑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형식적인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난 밖으로 나가 케밥도 사고 콜라도 샀다. 이제는 배를 불리는 일에도 신경 썼다. 먹을거리들을 사가지고 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곳에서는 인터넷이 됐고 드디어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들었다.

그때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는 콜드플레이의 'Lost' 피아노 버전이었다. 그 피아노 소리와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나무로 된 바닥과 서까래 천장을 울렸다. 글도 적었다. 내 며칠, 몇 주를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했고 그때부터는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 내고 지낼 수 있는 숙소를 구할 때까지 한인 민박집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처럼 유학을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과 가까워졌다. 덕분에 프랑스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고 점점 파리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사라'라는 이름의 친구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한마디의 프랑스어도 필요 없을 만큼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이였다. 프랑스 사람들과 프랑스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녀 앞에서는 비겁해졌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난 여전히 프랑스 사람들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학원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나 친분을 쌓은 친구 아드리앙과는 대화가 수월한 편이었는데 그건 아드리앙의 프랑스어를 말하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기에 그랬다. 프랑스어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는 학생들을 위해 말을 천천히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다른 이름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의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눴더라면 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프랑스어가 아주 늘어온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처음보다는 조금 발전해 돌아왔다. 한국에서 만난 한 수다스러운 프랑스 여자의 말을 이해해낼 정도는 됐다.

“난 가구가 없는 방을 원했는데 그분은 내게 가구가 딸린 방을 소개해 줬지 뭐예요!”

그때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듣는 일이 중요했고 내가 먼저 말 할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는 정도였다.

"혹시 미테랑 도서관이 어디쯤 있는지 아시나요?"

"네. 저쪽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틀면 커다란 건물이 보일 거예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뒤에는 혼자 뿌듯해하고는 했다.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파리 생활 초반에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다. 파리 사람들은 친절했다. 심지어 그런 사람도 있었다. 어떤 남자에게 길을 물었는데 갑자기 앞에 있던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 프런트에 있는 직원에게 종이 한 장을 뽑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호텔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종이 한 장을 뽑아 그 남자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그건 지도였다. 이걸 참조해보라며 지도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곁에 있던 남자의 여자 친구는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냐는 듯 한숨을 내쉬며 손을 허리춤에 올려 놓고 있었지만 남자는 멋진 미소만을 남긴 채 떠났다.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을 마주치면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다. 아직 그 남자만큼의 친절함은 베풀어 본 적이 없지만, 가끔은 아예 오늘은 길에 외국인 없나 하고 돌아다닐 정도다.


프랑스로 가게 된 건 아주 복잡한 사연들이 있었지만 내겐 지네딘 지단의 역할이 컸다. 그는 알제리 이민 2세로 마르세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보면서, 난 백인들과 흑인들이 섞여 한 팀을 이룬 프랑스 팀의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지네딘 지단은 그 팀을 대표하는 영웅,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에펠 탑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 진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건 어쩌면 에펠 탑의 존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지네딘 지단이든 에펠 탑이든, 그것들은 모두 영웅처럼 우뚝 솟아 있는 존재였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꿈꿨다. 지네딘 지단의 인터뷰를 찾아보기도 했고, 에펠 탑의 사진을 보며 나는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비스듬하게 한 번 찍어 봐야겠다는 구체적인 구상을 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유학을 가려던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었다. ‘아멜리에’도 원래 오드리 또뚜가 아니라 영국인 배우 에밀리 왓슨이 주연을 맡기로 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프랑스어가 유창하지 못하다는 점과 스케줄 등의 문제가 겹쳐 출연이 불발되었다. 한편 장-피에르 죄네 감독은 아멜리에 역에 오드리 또뚜를 캐스팅하며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얼굴은 광각에 특이하게 반응한다’.

앞서 말했지만 아멜리에는 프랑스에서 원래 아멜리로 발음한다. '아멜리'. 애초에 에밀리 왓슨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는 감독의 말을 참고하면 에밀리를 아멜리로 바꾸면 매우 그럴듯하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제목을 고민하다, 아멜리로 할까 아멜리에로 할까 갈등을 지속하다 새로운 단서 하나를 찾게 됐는데 그건 바로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 존재였다.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이라는 4차원적인 제목의 소설로 데뷔한 벨기에 국적의 작가. 심지어 에밀리 왓슨과 아멜리 노통브는 생김새도 꽤 비슷한 편이다. 진실은 장-피에르 죄네의 머릿속에.

아무튼 난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로 오게 되었다. 분명한 목적은 여행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설득시켜야만 했고 목적은 유학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으니 취업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영국에 초콜릿 만드는 것을 배우러 간다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제과제빵 학교 입학을 목표로 두고 영어를 공부했고 입학할 학교도 미리 정해둔 상태였다. 잉글랜드 남쪽 바다를 낀 도시 본머스에 있는 학교였는데 그곳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학비가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항상 그곳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유학 생활을 준비했다. 그곳에서의 여행을 꿈꿨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그 학교 홈페이지가 사라지고 없었고 난 곧바로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만 했다. 뜻하지 않게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프랑스 루앙이라는 도시에 있는 INBP라는 학교였다. 지금은 SPC 그룹을 통해 국내 과정도 개설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의 국립 제과제빵 학교인 덕분에 입학, 수강료가 그리 비싸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학교에 가 입학 상담까지 했지만 INBP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프랑스어가 부족했고 학교는 입학을 허가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 며칠 동안, 일주일이었나 루앙이라는 도시를 잘 여행했다. 막막함과 좌절감 속에서 말이다. 여행의 현실이란 원래 그렇지 않은가.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경험을 했고 난 파리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파리로 오기 전 묵고 있던 호텔 방에서 TV를 보게 됐는데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내가 프랑스에서 처음 보게 된 방송이 북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할 일이 없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는데 북한 사람들이 TV 화면에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나중에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하지 않았다'라는 소설을 쓰게 된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 방송은 한 프랑스 남자가 북한을 여행하는 다큐멘터리를 TV로 송출하고 있었다. 난 그 방 안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잔 다르크의 무덤이 있는 도시 루앙을 떠나 철의 여인 에펠 탑이 있는 도시 파리로.

파리에 며칠 있는 동안 난 아마도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루앙에 머무르는 며칠 간 파리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움은 추진력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동력을 얻기 위한 잠깐의 머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다시 동력집중식 기차 TGV에 오르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