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by 문윤범


"창작은 구토와 같아요. 잘못 먹은 것들을 토해내는 일이죠. 때론 술을 많이 마셔서 전봇대를 붙잡고 속에 있는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일이 되기도 하죠."

그들은 그 남자가 하는 말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채로 뱉어내는 그 단어들을 누군가는 수집하며, 다른 누군가는 그의 말을 흘려 들은 채로 그 남자가 입은 니트와 셔츠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는 작가가 되기까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눈동자는 그의 말에 흔들리기도 했고, 표정은 때론 그가 하는 이야기들에 짧은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소가 되고, 표정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그의 목소리 뿐이었다.

"누군가가 제게 이 길에 대해 물으면 전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 번 걸어볼 만한 길이라고. 하지만 이 말도 꼭 해주고 싶어요. 걷기 힘들다고. 이곳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곳이라고."

강연은 끝났다.

남자는 대기실 의자에 놓아 두었던 검은색 가죽 가방과 회색 코트를 챙겨 나왔다. 몇몇 학생들의 사인, 사진 요청과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뒤로 한 채 건물을 빠져 나왔다. 캠퍼스를 걷는다. 그래 봤자 정문까지의 거리는 짧다. 그곳은 차라리 교정에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오늘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 앞으로 와있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본다. 그는 나를 봤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떼어낸 채 차에 올랐다. 회색 쏘나타 차를 몰고 사라졌다. 혹시라도 자동차 거울을 통해 나를 보지 않을까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나는 교정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동안 그곳을 걸었다. 우르르 몰려 나오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았고 지나쳤다. 그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렸다 사라졌다.

그들이 나온 건물 앞에 서 계단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올랐다. 중년의 한 여성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냄새가 코 끝을 스치고 지났다.

그곳 어딘가의 문을 열었을 때 마주친 풍경은 불이 꺼진 채로 아직 남은 온기만이 손과 뺨으로 전해질 뿐인 텅 빈 단상과 객석이었다. 그곳에 머물렀을 것들, 이야기들.

플랜 B, 또 다른 나. 그리고 두 번째 삶.

내가 그의 새로운 집을 알아내 찾아가 그를 죽인다면 당신은 어떤 감정에 휩싸일텐가.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는 나를 보며 당신들은 어떤 표정을 지어보일텐가.

나는 동주가 입었던 코트와 옷들을 가지고 나올 테고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날 것이다. 남겨졌을 지문들을 모조리 지우고 발자국도 지워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올 것이다. 아 참!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걸 깜빡했다. 검은색 가죽 가방까지 챙겨 나와 다시 거리를 걸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그곳에 A는 없을 것이다. 나를 찾아도 그곳에는 내가 없을 것이다. 당신은 곧 B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기를.

7년 뒤, 그리고 일 년 후의 내 모습. 누구도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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