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중국 교수 동료와 함께· 3부)

떠날 수밖에 없던 자리, 그리고 마음이 남은 사람

by 박주영

낯선 나라에서 시작된 인연

“전에 학교 캠퍼스에서 봤는데, 맞죠?”

고 박사가 내게 처음 건넨 인사였다.

그때 나는 부임한 지 겨우 일주일.
낯선 연구센터의 공기 속에서 새 장비의 작동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웃으며 답했지만, 그의 부드러운 말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했다.


며칠 뒤, 점심시간.
동료 교수가 나를 소개했다.

“한국 연세대에서 오신 박 박사님이에요. 고 박사랑 연구분야가 비슷하죠.”
“아, 그래서 낯익었나 봐요.”

그의 미소에는 진심 어린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언어는 달라도, 과학의 언어는 같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종종 연구 이야기로 점심시간을 채웠다.


생일, 그리고 잊지 못할 하루

내 생일이 다가오던 날,
고 박사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 생일이죠? 저녁에 시간 있어요?”

그는 근처 한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김치찌개의 익숙한 냄새가 한순간 이방의 외로움을 녹였다.

“이곳에서 생일은 조금 쓸쓸하죠?”
“네, 연구실이 제 집 같아요.”

우리는 웃으며, 각자의 길 위에서 견뎌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는 약학 전공으로 출발했어요.
대학원 시절부터 포닥때에도, 스승님이 원하는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밖에 없어서 제한을 많이 받았거든요. 독립한 과학자로 드디어 제 자리를 잡게 되어서 기뻐요.
이제야 하고 싶던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죠.
실험은 고되지만, 그만큼 보람이 커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저는 아직 그런 확신이 없어요.
박 박사님이 부럽네요.
그렇게 간절히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그날 밤, 그는 영화표를 미리 예매해 두었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한 번 해봐요. 생각보다 재밌어요.”

그날, 나는 인형 하나를 뽑았다.
그 인형은 지금도 내 연구실 책상 위에 있다.
그날의 따뜻함을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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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의 벽, 그리고 선택의 용기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고 없이 균열을 만든다.

그해 겨울,
학과장은 내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라며 압박했다.

“공동저자로 넣지 않으면, 이 연구실을 떠나야 할 거야.”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직접 쓴 연구비, 사비로 산 시약들,
밤을 새워 만든 데이터였다.


“이건 제 연구입니다.”

나는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시약은 두고 가야지.”


나는 영수증과 증명서를 내밀었다.

“전부 제 개인 비용으로 결제한 겁니다.”

그의 표정에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이직이 시작되었다.


솔메이트의 손길

이직을 준비하던 3개월 동안,
시약 보관 문제로 난감해하던 나에게
고 박사는 한치도 주저없이 말했다.

“제 냉동고, 공간 있어요. 맡겨두세요.”

그는 직접 시약 박스를 옮겨
생물안전 초저온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새로운 학교로 이사 가는 날,
그는 드라이아이스 포장까지 해
직접 냉동 운송을 맡아주었다.


택배 상자를 받아 들었을 때,
손끝이 떨렸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따뜻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공명하는 존재,
이방의 땅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눈 ‘Soul mat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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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 위에서

이제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나는 새로운 대학 즉 현재의 대학교에서 실험실을 다시 세웠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끔 논문 링크와 학회 소식을 주고받는다.


이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연구의 문장 곳곳에는
그의 이름 없는 흔적이 남아 있다.


다시, 나의 자리로

소울메이트는 사랑보다 조용하고,
우정보다 깊다.

그는 내 데이터를 대신 분석해 준 적은 없지만,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을 정리해 준 사람이다.


중국에서의 2년은 고통과 성숙의 시간이었고,
그 안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온기가 있었다.


이제 나는 다시,
새로운 실험 데이터를 쌓는다.
그가 남겨준 온기를 기억하며,
오늘도 연구실의 불을 켠다.


에필로그

이직을 결심하기 전,
전 직장의 마지막 식사 자리였다.


고 박사와 나, 그리고 늘 푸근한 장 박사님이 함께였다.

식사 중, 고 박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 예전에 캠퍼스에서 박 박사 본 적 있어요.”

장 박사님이 젓가락을 멈추더니 피식 웃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을 네가 어디서 봤겠어?
아마 꿈에서 봤거나, K-드라마에서 본 너의 이상형이겠지?”

순간,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 짧은 농담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그는 정말 꿈에서 먼저 내게 다가왔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 후로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그 기억 하나만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스쳐간 인연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서로의 세계를 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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