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삼키지 못할 만큼, 내가 단단해지는 날
며칠 전, 아주 오랜 꿈을 꾸었다.
모교 캠퍼스의 벚꽃이 만발하던 봄날,
햇살은 부드럽고, 공기는 투명했다.
그 길 끝에서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웠어.”
그 사람은 젊고 순수하던 시절 나의 첫사랑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움이란 결국 사람보다 시간에 대한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 시절의 한국,
그리고 그 시절의 나 자신이었다.
요즘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은,
첫사랑을 떠올릴 때의 그것과 닮았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때의 공기와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도 그렇다.
내가 그리워하는 한국은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추억 속의 계절로 남아 있다.
이제 그 시절의 한국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첫사랑이 되었다.
중국에서의 나의 하루는
연구, 강의, 자기 계발, 그리고 글쓰기로 이어진다.
아침 일찍 출근 후,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루킨커피(Luckin coffee) 드립백을 뜯는다.
작은 종이 필터 안에 담긴 원두가
묘하게 고요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매일 1,500원짜리 컴포즈 커피를 손에 들고 출근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신 나는 사무실에서 직접 원두를 내린다.
잔당 약 400원, 조용한 향, 그리고 일상의 의식.
누군가 묻는다.
“중국의 어떤 점이 그나마 한국보다 낫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 커피요. 오직 이 커피.”
처음엔 그저 습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커피 한 잔이 나의 하루를 ‘정리’하고 마을을 가라앉히는 '의식'이 되었다.
그리움이란 묘한 감정이다.
억누르면 더 커지고, 바라보면 조금 작아진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그리움을 바라본다.
나는 조금 더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적시는 순간,
그리움 대신 향을,
불안 대신 온도를,
그리고 고독 대신 존재의 감각을 채워 넣는다.
그리움도 천천히 향기로 스며들어 조용히 마음을 덮는다.
어제의 커피는 피로를 달래는 음료였고,
오늘의 커피는 고요를 배우는 명상이 된다.
내일의 커피는 또 어떤 의미를 품게 될까.
이렇듯 나는
한 잔의 커피로 하루를 배우고,
하루의 끝에서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한 타국 생활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손으로 구조물을 세우는 건축가처럼
삶의 모든 층위를 하나씩 쌓아 올리고 있다.
한국을 떠나 이방의 땅에서 시작한 교수의 삶.
누구의 이름 아래서도 아닌,
나 자신의 이름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논문을 완성한다.
스승의 지시를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이제는 나만의 학문적 언어로 세상을 설득하는 리더다.
실험대 위의 모든 선택이 내 결정이고,
그 결과 또한 내 책임이다.
이 긴장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경제적 안정은 그 자유의 토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대기업 연봉을 받던 시절보다
이곳에서의 나는 더 넓은 집에서,
더 단순하고 풍요롭게 살아간다.
검소함은 여전하지만,
이제 그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균형’의 미학이다.
한 잔의 커피,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발견이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진짜 자립은 통장 잔고로 증명되지 않는다.
진짜 자립은 ‘의지의 구조’로부터 비롯된다.
누구의 보호 없이도 나를 책임질 수 있는 확신,
그게 바로 내가 스스로에게 쌓아 올린 가장 단단한 기반이다.
이방의 도시에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고요해진 마음으로.
이제 나는 안다 —
진정한 독립이란
‘누구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부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일임을.
교수식당의 점심을 마치고,
학교 캠퍼스 내 호숫가를 따라 산책한다.
호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호수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매일 달라진다.
어느 날은 그 고요가 위로이고,
어느 날은 그 적막이 두려움으로 번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호수 위의 흑조를 바라본다.
외로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품격,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잔잔한 평화.
흑조는 나에게 말없이 가르쳐 준다.
세상과 너무 가까워지면 시야가 흐려지고,
너무 멀어지면 마음이 메말라간다.
그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묵묵히 호흡하며, 제 자리를 지킨다.
그 균형이 부럽다.
세상과의 거리, 사람과의 거리,
그리고 나 자신과의 거리.
모두를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에 매이지 않는 자유.
어쩌면 인생이란
흑조처럼 떠 있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흔들리되 가라앉지 않고,
외로우되 고립되지 않는.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
한국을 떠나 중국의 호숫가에 머무르며,
나는 매일 다른 하늘 아래 어제보다 성숙해진 나를 만난다.
외로움 속에서 중심을 잡는 법,
단조로움 속에서 온기를 느끼는 법,
멀리 있어도 여전히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법.
이제 나는 그리움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리움은 나의 일부이고,
나를 더 단단해지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사람’으로 서고 싶다.
고향이란 결국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걸,
이 시간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워하지 않아도,
그곳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오늘도 나는,
그 고요한 향 속에서 나를 빚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