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과학자 그리고 사랑>1부
삶은 때때로 너무 절묘한 타이밍으로
예상 못한 문을 동시에 열어젖힌다.
그와의 사랑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깊게 흔들렸던 사랑이었다.
사람의 인생에는, 한 번쯤 따뜻한 빛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끝내 붙잡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
나에게 그 사랑은 미국 버클리의 햇살보다 먼저,
서울의 봄날에 찾아왔다.
중국 의대에 전임교수로 임용되기 전,
한국 모교 의료원에서 연구조교수로 지내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
실험과 논문, 마감과 회의가 끝없이 이어지는 치열한 연구자의 하루 속에서—
나는 마침내, 오랜 준비와 사전 컨택 끝에 미국 UC Berkeley로부터 visiting scholar 초청 메일을 받았다.
긴 박사 과정과 한국에서의 숨 가쁜 연구 생활을 지나
드디어 내 연구가 세계 무대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중요한 offer를 받은 바로 그 시기—
나는 서울대 공학박사였던, 나보다 네 살 오빠였던 그를 소개받게 되었다.
삶은 때때로 너무 절묘한 타이밍으로 예상 못한 문을 동시에 열어젖힌다.
나는 버클리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고, 그는 이미 5년째 버클리에서 포닥으로 연구를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같은 도시를 향해 있었지만 서로 알지 못한 채 다른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그가 교수 임용 면접을 보러 한국에 잠시 들어온 그해 봄,
오전 면접을 끝내자마자 연세대에 있는 나를 보러 왔다.
오랜 미국 생활의 흔적과 나를 향한 반가움이 한꺼번에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연구’가 아닌 ‘사람’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정을 경험했다.
그 사랑은 조용했고, 단정했고, 간결한 문장처럼 스며들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연세대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봄 햇살은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은 마치 우리 둘만의 길을 열어주듯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미국에서의 외로운 밤들, 끝없는 실험과 부침,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의 무게를 천천히 내게 쏟아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한국에서의 숨 가쁜 연구실 삶,
버텨내고 견뎌내던 날들의 쓸쓸함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살았던 두 사람이 캠퍼스 길 위에서
하나의 온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며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먼저 알아들어 주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대화는 공기처럼 부드럽게 흐르고,
감정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번져갔다.
그와 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온기가 있었다.
햇살이 아름답게 내려앉던 그 연세대의 오후—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여의도 한강공원을 걸었다.
서울의 봄, 꽃잎이 바람에 스치며 날아오르던 그날의 공기를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한강에서는 흐르는 물결과 함께
벚꽃이 마지막 잔향처럼 흩날리고 있었고,
우리의 걸음 사이로 봄꽃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박사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
포닥 시절 새벽까지 이어지던 실험,
논문과 연구비 사이에서 짓눌렸던 날들,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었던 책임들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언어는 과학자로 살아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깊고 가장 고독한 언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잎이 흩날리는 그 봄날의 한강에서는
그 고통마저도 어딘가 부드럽게 감싸 안기는 것 같았다.
그때, 건너편에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꼭 잡은 채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꽃잎이 노부부의 어깨 위로 살포시 떨어지고,
그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봄 햇살 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십 년 뒤… 내가 저렇게 걷는다면,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요?”
그 말은 봄바람처럼 가볍게 들렸지만,
내 마음 한편은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감정을 너무 쉽게 건드리면 무언가 중요하고 고운 결이 깨져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날의 한강, 그 봄꽃 내음, 그 조용한 질문.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부드러운 계절처럼 남아 있다.
우리는 63 빌딩으로 향했다.
그 시간은 젊은 과학자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여유’였다.
아쿠아리움의 푸른 수면 아래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조금씩 풀렸고,
그 웃음 속에는 버티고 견디던 날들의 피로가 잠시 녹아내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상에 오르자,
서울의 야경은 금빛 별자리처럼 발밑에서 펼쳐졌다.
그 빛들은 마치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실험실의 불빛과 겹쳐져
참 오래도 고단했던 젊은 날을 말없이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말했다.
“버클리에서 이 풍경을 떠올리면… 늘 서울이 그리웠어요.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하나도 안 그립네요.”
나는 그 말의 결을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연구와 생존에 밀려
사람을 향한 마음을 제대로 느껴볼 시간조차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누군가와 단둘이 야경을 바라보고,
그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이런 순간은
그 자체로 사치였고, 그래서 더욱 벅찼다.
그 밤의 서울은 논문보다 선명했고,
연구실보다 따뜻했으며,
잠시나마 우리가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드라마 같은 밤이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미국 Post-doctoral Fellowship Grant를 성공적으로 수주받고
J1 비자를 준비하며 버클리에서의 1년을 향해 차근차근 삶을 정리해 나갔다.
낯선 나라에서 다시 처음부터 생활을 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용기와 결심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경력의 페이지를 넘기는 설렘과 모든 기반을 내려놓아야 하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연구 일정도 빠듯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내 미국 정착을 돕기 위해 놀라울 만큼 세심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내 곁에 머물러 주었다.
생활 팁 하나, 연구실 문화의 차이, 어디에서 장을 보고 어떻게 교통편을 이용하면 좋을지—
사소해 보이지만 혼자였다면 막막했을 것들을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사람처럼
조용하고 성실하게 알려주었다.
그 배려는 이방인의 긴장으로 얼어 있던 내 하루를 조금씩 녹여주었다.
버클리에 도착한 첫날,
나는 공항에서부터 캠퍼스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같은 생각을 되뇌었다.
‘내가 정말 다른 세계로 왔구나.’
공기는 가벼웠고, 빛은 금빛으로 퍼졌고,
사람들은 묘하게 자유로운 걸음으로 캠퍼스 언덕을 여유 있게 지나갔다.
버클리의 아침은 정말로 특별했다.
유칼립투스 잎이 스치는 향,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넘어오던 살짝 차가운 바람,
언덕을 따라 부서지는 햇빛의 결—새벽부터 도시 전체가 하얗게,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는 듯했다.
그 광경 속에서 나는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내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버클리는 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연구실은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고, 늦은 시간에도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재료공학의 세계에서, 나는 바이오메디컬 연구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과학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버클리의 밤만큼은 우리 둘의 공통된 무대였다.
나는 매일 늦게까지 실험실에 있었고,
그는 늘 약속이라도 한 듯 정해진 시간에 연구실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오늘은 괜찮았어요?”
그가 건네던 짧은 한마디는 이방인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고 단단한 온기였다.
함께 늦은 밤의 캠퍼스를 걸어 내려오며 우리의 하루는 비로소 안전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마무리되곤 했다.
과학자의 주말은 자주 연구에 빼앗겼지만 그래도 시간이 허락하는 날이면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조용하고 로맨틱한 식사를 함께했다.
실험의 실패와 성공을 끝없이 오가던 삶 속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마치 우리가 사랑이라는 또 다른 인생의 탐구를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같은 도시 안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서히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와 나는 각자의 연구 필드에서—
미국, 한국, 중국의 명문대를 향한 교수 임용이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었고,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자의 미래가 우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감정은 깊어졌지만, 현실은 이미 우리에게 두 개의 갈림길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대에 있었지만, 서로가 걸어가는 궤도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굽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는 교수 임용에 성공해 미국 동부 명문대로 떠났다.
나는 버클리에서의 1년을 정리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논문 마무리 작업에 몰입했다.
같은 도시에서 같은 계절을 보냈지만, 그 끝은 서로에게 너무나도 달랐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지만
서로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계절이 달랐을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teneur-track 전임교수가 되기 위해 CNS급 논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나 또한 중국의 명문대에서 전임교수 임용에 성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를 남겼지만,
과학자의 삶은 언제나 “각자도생”이라는 냉정한 문장으로 이어졌다.
그와 나는 끝끝내 한 방향을 향해 걷지 못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조차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앞날을 정말로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성숙했고, 그만큼 서로를 아꼈다.
그래서 뒷모습마저 유난히 아름다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누구의 부족함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과학이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었지만
서로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 계절이 달랐을 뿐이다.
그 사랑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실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절의 나와 그가 가장 인간적이었던 순간들의 총합이었고,
연구실을 벗어나 잠시 ‘사람’으로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는 고요한 기록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우리가 더 평범한 직장을 다녔다면, 그래서 하루의 리듬이 조금 덜 치열했고,
지치지 않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만일, 우리가 미국 버클리가 아닌 서울에 함께 정착해 있었다면, 낯선 타지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대신
익숙한 도시의 품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사랑을 키워갈 수 있었다면—
만일, 우리가 엇갈린 시기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해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연애하고 결혼까지 이어져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속 해피엔딩은 결혼식장에서 멈추지만,
현실은 육아, 가사, 맞벌이, 커리어 전쟁이라는 다음 시즌이 반드시 따라온다.
그리고 나는 안다.
능력 있고, 야망 있고,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의 최우선순위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연애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진흙탕까지 갔다면…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공유했던 그 짧고 깊었던 순간들이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니치(niche)에서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나는 중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태계 안에 자리 잡은 두 명의 ‘이방인 과학자’.
서로 같은 뿌리인 한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한국을 그리워하며,
각자만의 과학적 성과로 한국을 빛내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끝났지만,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와의 사랑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깊게 흔들렸던 사랑이었다.
이별의 순간, 그 사랑은 내게 단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여성 과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과 커리어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삶일까?
혹은, 둘 다 잡을 수 있는 삶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 질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새겨졌다.
인생은 때때로 사랑을 통해 나를 비추고, 관계를 통해 나의 경계를 드러내며,
내가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오래 반짝이며 남아 있는 그와의 사랑을 떠올리면
문득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내 마음속에서 잔잔히 흘러나온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지난 사랑을 애도하는 대신 그 사랑을 마침내 온전히 완결하는 마음으로
그때의 나와 그를 조용히 축복해 본다.
그 계절은 끝났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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