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길 위에서, 사람의 온도를 배우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by 박주영

점심마다 교수식당에 간다.

혼밥이 편한 편이지만, 가끔은 다른 과의 류 교수님과 마주 앉는다.

우리 엄마 또래의, 말투가 부드럽고 눈빛이 따뜻한 여성이다.

세 번째 함께한 어제, 우리는 밥보다 사람 이야기를 더 오래 씹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화는 엉뚱했다.
“자기는 한국 사람처럼 안 생겼네.

한국 사람 눈, 다 작지 않아? 자기는 눈이 참 큰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한국도 사람 눈 크고 작음이 다 있어요.

기회 되면 한국 구경 와요.

사람도, 자연도, 생각보다 다양해요.”

그제야 알았다.

그녀는 한 번도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었다.

넓은 나라에 사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자기 생활 반경을 세계의 전부로 오해한다.

그 말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사람은 본 것만큼 말하고, 걸어본 만큼 이해한다는 사실.


두 번째 식사 때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정년까지 있을 거야, 아니면 한국 돌아갈 거야?”
나는 늘 하던 대답을 했다.

“어디에 있든, 저는 제 자리에서 잘하겠습니다.”
나의 화법은 현재형이다.

먼 계획을 과시하는 대신, 오늘 책임을 말하는 쪽을 택한다.


세 번째 식사, 날씨는 영하였다.
명절 얘기로 옮겨가자 그녀가 말했다.

“혼자 멀리 와서 고생 많네. 설에는 어떻게 해?”
아마 일할 거예요. 논문도, 과제도 마감이 줄 서 있어서요.”
그녀는 웃으면 말했다.

“모범생이네, 워커홀릭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때 교수들은 조금 수월했어. 지금처럼 연구성과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거든.

난 곧 은퇴라 이젠 강의만 해. 명절엔 가까운 친척들 인사 다니고.”


우리는 식당에서 단과대 건물까지 십 분을 걸었다.

내 걸음이 빠른 편이라 그녀가 뒤에서 불렀다.

“좀만 천천히!

날다람쥐인 줄 알았어.”
그때 그녀는 팔짱을 가볍게 끼었다.

마치 겨울 장갑처럼, 따뜻한 감촉.
그녀의 딸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나는 타국에서 교수로 제자를 양성하고, 연구를 한다.
낯선 도시의 두 여자가 잠깐 같은 속도로 걸었다.

그 짧은 팔짱에는,

딸을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

모국을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

조용히 함께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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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었다.

“퇴직 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싶으세요?”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중국은 보통 그래. 자녀 따라가 애 봐주고, 뒷바라지하지.”

그 말이 왠지 짠했다.

평생직장에서, 평생 가정에서—

늘 누군가의 필요가 먼 저였겠구나.
“선생님 자신을 위해 즐겨보세요.”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간표가 있고,
각자의 언어가 있다.
내 기준의 자유
모든 사람의 해답일 수는 없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를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너무 많고,

몰입의 기쁨은 여전히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타인의 선택을 효율로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아이가 삶의 즐거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연구가 삶의 행복이니까.
각자의 사랑 방식이 다를 뿐,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도구이자,
동료라는 창을 통해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생을 소설 읽듯 음미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일하며 얻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오늘의 결론은 단순하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버티고, 사람 덕분에 다시 속도를 맞춘다.
연구는 데이터를 남기고, 삶은 온도를 남긴다.
그리고 그 온도는, 겨울 길에서

누군가와 팔짱을 끼는 십 분이면 충분히 전해진다.



독자님께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속도를 맞춰 팔짱 끼고 걸어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지금의 당신에게 효율이 아닌 온도를 남겨줄 선택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다음 계절은, 어떤 사람의 언어로 바뀌고 있나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서로의 온도를 조금만 더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