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안부, 나의 길 — ‘나만의 별’을 달기까지

스승의 그늘을 지나, 내 이름으로 빛나다

by 박주영
금의환향은 내 마음속 오래된 북극성이다.
그러나 별은 도착이 아니라 방향으로 있을 때 더 오래 빛난다.
어느 쪽이든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 나는 나의 별을 스스로 단다.
그리고 어느 날 한국의 문이 열린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필연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2025년 12월, 두 해 만에 모교 스승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요즘 근황이 궁금한데, 통화 가능할까?”

나의 제자를 데리고 진행했던 랩미팅이 끝난 뒤에야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드리니, 저녁 약속 길인지 주변이 소란했다.

“여름에 쑤저우 학회에 갔었어. 거기 동료에게 물으니 벌써 이직했다더군. 좋은 학교였는데 궁금하더라.”

“작년 봄,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현재 의대로 옮겼습니다. 부교수로 승진했고요.”
“그래? 더 잘 돼서 갔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연락 자주 하자.”

짧은 안부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시에, 어쩌면—하는 예감도 스쳤다.

스승님이 정년을 앞두고 ‘다음’을 떠올리는 그 마음 한쪽에 나를 얹어보는 상상.

소망일지라도, 그 상상은 내 등을 바르게 세웠다.


이직의 계절을 지나오며

나는 두 해 전, 첫 전임 임용 대학을 떠났다.
내부 갈등과 성과 갈취, 모순된 규칙을 감내하는 대신, 두 달 동안 열 곳의 면접을 치르고 지금의 대학으로 옮겼다.

두 번째 무대에서 나는 전임 부교수로 승진했다.
해외 고급 인재 처우, 현지 동료보다 훨씬 높은 연봉, 독립 연구실과 자체 예산—

표면만 보면 “더 잘 되어서” 온 결과다. 그러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서류 제출, 면접 대기, 조건 협상, 오퍼 검토로 밤낮이 뒤섞였고, 어느 새벽에는 악몽에서 깨어 울기도 했다. 그 시기, 엄마를 중국 집으로 모셔와 버팀목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스승님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비전임의 보조자 자리에서 전임의 책임자 자리로 옮겨온 무게를, 내 힘으로 감당하고 싶었다.
도움을 청하면 ‘안전’은 얻을 수 있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자존이었고, 운이 아니라 실력이 길을 여는 경험이었다.

전임교수는 호칭만 바뀌는 자리가 아니다.
연구의 방향을 설계하고, 예산을 결정하고, 사람을 뽑고 키우며, 실패의 비용까지 자기 이름으로 책임지는 자리다.
나는 그 무게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나를 오늘의 자리로 데려왔다.


“별은 스스로 다는 것”

요즘 짧은 영상에서 본 <흑백요리사> 손종원 셰프의 말이 오래 남는다.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해도, 그 별이 곧 내 별은 아니더라구요. 내 별은 내가 달아야 해요.”
스승님의 명성은 나를 빛나게 했고, 모교의 이름은 분명 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이름으로 빛을 내야 한다.
연구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팀을 세우고, 논문으로 세계에 말을 거는 일—그 모든 과정이 ‘나의 별’이 된다.


‘찾고 싶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중국에서 홀로 서는 일은 생각보다 거칠다. 평가 체계와 학술 문화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많았고,

그럴수록 그럴수록 한국을 이상화하며 그 시절 ‘예전 방식’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다 송길영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한 줄의 힌트를 붙잡았다.

예전의 방정식을 반복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나의 쓸모를 새로 설계하라.

공부도 전 과목 만점이 아니라 나만의 좁고 깊은 전문성으로 향하라. 이미 밝혀진 것을 더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내가 스스로 찾아내는 공부로.

그 문장이 내 시선을 바로 세웠다. 장소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묻자.

나는 내 무대에서 얼마나 창의적으로 증명하고 있는가. 경쟁자와 등수를 겨루는 대신, 내가 만든 문장을 더 선명하게, 내가 낸 데이터의 해상도를 더 높게. 그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공부법이며, 연구자의 품위다.


경량문명은 우리에게 또 한 가지를 요구한다. ‘찾고 싶은 사람’이 돼라. 도구처럼 서로를 소비하는 관계가 아니라, 동등하게 배우고 나누는 쿨한 연대. 그 연대의 조건은 화려한 간판이 아니라 ‘핵개인’으로서의 매력—꾸준히 배우고, 스스로 갱신하며, 불안을 에너지로 바꾸는 태도다.


나는 그 길을 택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터전을 옮겨 아무도 깔아주지 않은 발자국을 묵묵히 냈다.

주말에는 새로 배우고, 평일에는 스스로 깨친 것을 실험과 문장으로 검증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은 내 작은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 회의에서 내 질문이 방향을 잡아줄 때, 공동연구에서 내가 만든 도구와 설계가 팀의 시간을 줄여줄 때—그때 나는 알았다. ‘찾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결국 전날의 나와 경쟁해 오늘의 나를 갱신하는 일이라는 것을.


스승의 그늘을 지나, 스승이 되는 길

돌아보면 스승님은 늘 앞에서 바람을 맞으셨다.
우리가 순수하게 학술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그 바람을 대신 견디는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역할이 내게 넘어온 것이다.
학생의 실패를 흡수하고, 평가의 파도를 가르고, 연구의 방향을 설계하는 일.
한때 “보호받던 제자”였던 내가 “보호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가 만든 연구의 세계의 ‘모름’을 얼마나 줄였는가.
내가 함께 걷는 이들의 시간은, 내 곁에서 더 단단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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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론은: 금의환향을 꿈꾸되, 오늘의 무대를 사랑한다

금의환향은 내 마음속 오래된 북극성이다.
그러나 별은 도착이 아니라 방향으로 있을 때 더 오래 빛난다.
나는 여기서 성과를 내고, 여기서 사람을 키우며, 여기서 나의 별을 달겠다.
그렇게 쌓인 시간과 내가 만든 결과가 먼저 나를 찾아가고, 사람들이 나를 먼저 찾아올 것이다.

언젠가 스승님의 전화를 ‘제안’으로 바꿀 수도 있다.

혹은, 내 무대 자체가 종착지가 되어도 좋다.
어느 쪽이든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 나는 나의 별을 스스로 단다.

그리고 어느 날 한국의 문이 열린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필연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스승님의 안부 전화는 내게 말한다.
“잘하고 있구나. 계속 가거라.”
나는 대답한다.
“네, 여기서 더 잘하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단 제 별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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