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덮고, 내 삶에 적용하는 시간
같은 문장도 두세 번 다시 읽으면 각도가 달라진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삶의 국면과 일의 밀도가 바뀔 때마다 밑줄은 겹겹이 새로 깔렸다.
해외에서 홀로 일하며 버텨낸 힘의 원천은, 퇴근 뒤 30분의 독서였다.
중국 현지에서 한국어 책을 구하기 어려워 귀국 때마다 캐리어에 책을 꾹꾹 채워 왔다.
서울집 서재의 책들을 다시 골라 담고, 새로 나온 책도 사서 가져왔다.
그렇게 지금 내 책장에는 세브란스 북클럽의 책들이 작은 서가를 이룬다.
박사 졸업 뒤 나는 모교에 남아 연세의료원(세브란스)에 입사했다.
교직원 복지로 분기마다 책 상자가 도착했다. 그 상자는 내게 가장 설레는 선물이었다.
한 해 네 번뿐이라 더 아쉬웠고, 그래서 더 귀했다.
상자를 열 때마다 종이 냄새가 먼저 올라왔고,
그 향을 들이마시면 바쁜 하루에도 잠깐의 ‘나’로 돌아왔다.
펠로우 시절, 회의와 실험 사이, 병동과 연구실 사이의 좁은 틈에 책갈피를 끼워 넣었다.
기록은 사라져도 언어는 남는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북클럽 사이트에는 지정 도서를 읽고 1,000–3,000자 감상문을 올렸다.
같은 책을 두고도 전공, 경력, 성정에 따라 밑줄의 자리가 달랐다.
내 글 아래 남겨진 짧은 공감한 한 줄—“선생님의 리뷰를 보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 졌습니다”—은 오래 남는 연료가 됐다.
지금은 그 프로그램이 계속되는지 묻지 않는다.
퇴사 이후에도 내 책장에 남은 스무 권 남짓의 책이, 내게는 더 크고 조용한 증거다.
같은 문장도 두세 번 다시 읽으면 각도가 달라진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삶의 국면과 일의 밀도가 바뀔 때마다 밑줄은 겹겹이 새로 깔렸다.
마치 동일한 데이터를 다른 파이프라인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처럼.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의 독서 문화와 모교 도서관,
그리고 그 북클럽이 더욱 소중해졌다.
매체에서는 독서율 하락을 말하지만, 체감으로는 우리 국민이 여전히 ‘읽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 가깝다.
학생 시절부터 첫 직장까지 모교에서 보낸 십수 년 동안,
전공서적뿐 아니라 인문·경제 등 교양서적을 원하는 만큼 빌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한국어로 생각을 나누고, 한국어로 읽은 감상을 이야기할 동료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도 고맙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요약해 건네면, 누군가는 곧장 도서관으로, 또 누군가는 서점으로 향했다.
지금 나는 다른 언어권에서 행정, 강의, 대학원생 지도, 연구계획서와 보고서를 모두 현지어로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사적인 시간에 읽은 책을 같은 언어로 공감해 줄 사람이 드문 현실이 가끔 아쉽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서 모국어로 감각과 생각을 나누는 지금 이 시간이, 더욱 귀하다.
일본 컨설턴트 겸 작가 야마구치 슈의 이 책은 경영·역사·심리·철학을 가볍지 않게 엮어,
책상 위에서 바로 삶으로 옮겨지는 실전의 지혜를 건넨다.
나는 이동 중에도 늘 종이책을 편다.
짧은 영상이 주는 즉각적 도파민 대신, 문장이 천천히 스며들 때 얻는 오래가는 쾌감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9년 한국어 번역본 초판 1쇄로 ‘세브란스 북클럽’을 통해 받았던 그 한 권이다.
시간이 흘러 개정판이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내 서가에 꽂힌 초판은 더없이 각별하다.
손때가 밴 밑줄과 접힌 모서리, 페이지 사이에 끼워 둔 메모들까지.
지금은 새 책으로는 구할 수 없는, 나만의 작은 문화유산이 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 개념에 깊이 끌렸다.
서로 다른 분야의 고수들이 일에 푹 잠긴 채 시간 감각을 잊는 그 상태—그것이 바로 몰입이다.
그 지점에 들어가려면 과제의 난도와 자신의 역량이 높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에만 머물면 지루해지고, 역량을 훌쩍 넘는 과제만 붙들면 불안이 커진다.
처음엔 누구나 ‘불안’의 영역에 선다.
하지만 손을 놓지 않고 전진하면 능력이 올라가고, ‘각성’을 지나 마침내 ‘몰입’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거기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기술이 축적되면 ‘자신감’으로 이동하고, 더 나아가 ‘안정’에 머문다.
다만 안정은 편안할지언정 성장은 멈춘다.
그래서 몰입을 계속 살리려면,
우리는 스스로 과제–역량의 비율을 조정하며 다음 언덕으로 옮겨 타야 한다.
돌아보면 나의 궤적도 그 도식과 닮았다.
모교에서 새로운 미션을 맡았을 때 나는 분명 ‘불안’에서 출발했다.
그 불안 위에 역량을 갈고닦아 오랜 시간 몰입을 유지했고, 끝내 목표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봤다.
안온한 ‘세이프 존’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 해외로의 독립을 택했을 때도 처음엔 다시 흔들렸다.
그러나 낯선 환경을 삶의 난도로 삼아 몸을 맞추고 나니,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몰입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몸으로 겪어 온 이 과정이 심리학과 철학의 언어로도 설명된다는 사실이다. 도전이 불안을 지나 몰입으로 이어진다는 이 단순한 진실.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의 본질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두려움이 천천히 집중으로 응고되고, 집중이 다시 기쁨으로 변환되는 순간들.
그 연쇄가 이어지는 한, 나는 계속 내 일을 사랑하며 더 깊은 몰입으로 걸어갈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국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퍼스널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케이의 말이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1972년, 그는 논문 속에 ‘다이나북(Dynabook)’이라는 이상적 랩톱을 그려 넣었다.
흔히 “예언이 적중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예측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그림으로 만들고,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끈질기게 움직였을 뿐이다.
예측은 자주 빗나간다.
경제와 경영, 과학기술, 그리고 개인의 삶까지—
도표는 단정하지만, 삶은 언제나 비정형이다.
의약연구를 하는 나 역시 선행연구를 토대로 가설을 세우지만,
실험대 위에서 마주치는 결과는 종종 가설보다 더 흥미롭고 더 낯설다.
그 순간이 바로 창의의 순간이다.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
삶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생을 살고자 한다면, 더 촘촘한 예측표보다 더 선명한 비전이 먼저다.
목표를 세우고, 피와 시간을 들여 매일 한 줄씩 현실을 덧칠하는 일.
성장과 성취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으로 쌓인다.
스무 살의 나는 ‘신약개발 연구팀을 이끄는 대학 교수’를 삶의 좌표로 삼았다.
다만 다섯 해 전까지만 해도 내가 중국에서 전임교수로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세브란스라는 한국 의료계의 ‘대기업’에서 애사심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길도 충분히 훌륭했다.
당시 30대 초반, 연봉은 넉넉했지만 학자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
남의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손이 아니라,
나의 질문으로 시작되는 연구를, 기초에서 임상으로 잇는 여정을 스스로 설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측을 접고, 비전을 택했다.
국내에서 갈고닦은 실력 위에 무대를 세계로 넓혔고, 전임교수로 독립해 팀을 꾸렸다.
가설을 세우고, 실패를 비용으로 감내하고, 다시 설계를 고쳐 나가며—
나는 내가 그리던 미래를 조금씩 만들어 왔다.
앨런 케이의 문장을 내 식으로 옮기면 이렇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선택과 내일의 반복으로 ‘조립’되는 것.
나는 오늘도 예측표보다 연구결과를 믿는다.
미래는 점(占)이 아니라 설계(Design)다.
얼마 전 멀리서 날 찾아온 의사 친구가 털어놓았다 (26화).
그녀가 커리어와 가정이 동시에 요동치자 유명한 명리 상담가를 찾았다고. "2026–27년이 고비"라는 말을 듣고 오히려 불안이 커졌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 들은 말이라면, 조심할 건 조심하자.
다만 나쁜 운이란, 집 안에 웅크린다고 비켜가진 않더라.
맞서 풀면 경험이 되고, 통과하면 무기가 돼. 결국 미래는 네가 만든다.”
사주를 믿지 말라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다만, ‘예언’이 내 삶의 리모컨이 되게 하지는 말자고.
예고는 표지판일 뿐이고, 길은 우리가 깐다.
불안을 줄이는 최선의 처방은 ‘정보’와 ‘실행’이다.
계획을 더 정교하게, 일과 관계의 루틴을 더 탄탄하게, 오늘의 작은 완성을 계속 쌓는 일.
그렇게 우리는 ‘예측’을 ‘창조’로 대체한다.
책은 내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버티게 해 주는 어휘를 준다.
한 줄의 어휘가 한 계절을 견디게 한다.
북클럽이 내게 남긴 것은 그 어휘력, 그리고 그 어휘로 나를 다시 설계하는 습관이다.
해외에서 일하는 지금, 그 훈련이 내 뿌리를 지탱한다.
배운 개념을 내 말로 다시 쓰면 오늘의 고민은 내일의 기준이 된다.
연구가 데이터의 축적으로 단단해지듯, 삶도 문장의 축적으로 길이 난다.
정확성·성실·품위—작은 선택들의 누적이 나의 좌표를 만든다.
한국어로 정리된 가치관은 외국어의 파도 위에서도 균형을 잡아 준다.
다음 화(2부)에서는 북클럽에서 고른 책들과 밑줄 친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실제 커리어와 일상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이어가겠다.
독자로서가 아니라, 현장의 연구책임자로서—문장을 어떻게 ‘무기’로 바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