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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설홍 Nov 19. 2022

이상한 경제관념

택시타는건 아까워도, 치킨은 못참지.

며칠 전 다시 취업을 했다. 연말이라 어디에도 취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불러줘서 너무 고마운 마음에 최저시급만 받고 일하는 관공서로 바로 어제 첫 출근을 했다.(결국 엄살같은 취업준비기를 남긴 것 같다)


지난번 직장이 집에서 1시간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이번 직장은 최대한 근거리로 고려했고 걸어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에 새삼 신이 났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렇게 가까운 직장은 알바할 때 빼고는 처음인 것 같았다. 어딜가든 40분 이상은 소요가 되었던 것 같은데, 이제야 사람들이 집 가까운 직장을 다니라는구나 하는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급여가 최저시급에 거의 준하기 때문에 아껴야 할게 많아졌다. 당장 나가야 할 대출 이자를 제외하고는 진짜 허리띠를 졸라 매면 맬 수록 나중에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투잡을 할까 하다가 아낄만큼 아껴보기로 회로를 돌렸다. 


출퇴근을 걸어서 하거나 따릉이로 할 수 있으니까 우선 교통비가 절약될 예정이라 신이 났다. 구내 식당 밥값이 3000원 수준인데다 집이 가까워서 여차하면 진짜 따릉이 타고 집와서 밥먹고 가도 될 정도라 그것도 아낄 생각에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비교해 보자면 전 직장은 광화문 근처라 밥값만 하루 1만원 정도였다 물론 식당이 있지만 접근성이 불편해서 김밥을 주로 사먹었는데 김밥도 4500원이었다. 교통비에 커피값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써야만 했던 불필요한 비용에 하루 2-3만원은 금방이었다. 그래서 얼마 벌지도 못했지만 거의 다음달의 내가 갚는 수준으로 돈을 쓰고 다녔었다. 집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되니 식비, 교통비 걱정은 따로 안해도 되니 그 점이 가장 좋았고, 커피 사먹는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저렴해서 다 합해도 많아봤자 하루 7천원 미만이었다. 


와, 세상에 이러다 나 돈 진짜 잘 모으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다가 연말이라 지출이 많을걸 생각하면, 그래도 곧 빠듯하지만 다음달의 내가 고생하겠거니 하고 쓸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어젠 첫날이라 근처에서 만원 가까이 하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었다. 오늘은 인수인계 주는 선생님의 마지막 근무라 식후 선물겸 15000원 가량의 디저트를 사서 나누어 주었다. 디저트를 사면서 오늘 두시간 꽁으로 일했다고 머릿속을 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0원대의 식당밥이 너무 맛있어서 나름 행복해 하던 중이었다. 식권카드를 구해서 10번치의 밥값을 미리 충전한 뒤 신이나서 커피까지 사서 들어왔다.


퇴근을 할 떄 즈음, 그때 까지 생각하지도 않던 식권 카드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3만원을 넘게 충전한 식권카드가 보이질 않았다. 충전을 하고 맨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떨어뜨린 기억이 없다. 식당에서 나와서 커피 가게랑 디저트 가게를 다녀온 것을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내가 그 카드를 어디다가 넣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 점심은 3천원이라 좋아했는데, 카드를 잃어버린 바람에 3만원짜리 점심을 먹은게 되었다. 세상 황당해서 너무 화가났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관찰 카메라가 있으면 되돌려 보고 싶은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루종일 일을 하면 한 8만원 정도를 버는데, 게 중 절반 넘게 오늘 날려버린 것이었다. 참나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체계적으로 없을 리가 있나. 솔직히 오늘 반나절은 자리만 보전하고 있었는데, 진짜 신이 정확히 반 나눠서 시급을 쳐준 것 처럼 그 절반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너무 황당한데, 내가 이런식으로 물건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닌데 3년 전 부터 진짜 잃어버리는 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적이 많었다.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살면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도, 지갑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9년에는 3개월 간격으로 지갑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출퇴근 하다가- 이번에도 밥 잘 먹고 디저트 잘 먹고 카드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건 이런 경우 도무지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난다는거다. 도깨비가 잠깐 세상을 멈췄다가 나 모르게 순식간에 가져간 것 처럼 그렇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날 물건들이라 그랬다고 다시 자기위안했다. 


3만원이 너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배달앱을 켰다 껐다. 배달 음식을 삼일정도 먹으면 3만원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와중에 배달을 3일 끊고 그 다음날 부터 먹으면 3만원은 절약된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어이가 없다. ㅋㅋ 중고 마켓에 뭘 판 적은 없지만 집에 가서 안뜯은 새 물건 들을 팔아서 3만원을 다시 채울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니다, 식권 10회권을 충전했고, 오늘 하나를 썼으니까 앞으로 9일은 점심을 굶을까 했다. 1만5천원의 디저트 선물은 그다지 아깝지 않아도, 3만원은 왜이렇게 아까운지.. 에라이, 그냥 액땜했다 생각하자. 누군가가 그 카드를 주워서 맛있는 밥을 먹으면 그걸로 적선했다 생각하자. 라고 자기 위안을 하며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 주말에는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생각이다. 지난달 카드값을 미리 정산을 하고 얼마남지 않은 잔고를 보며, 다시 한번 투잡을 할까 깊이 고민해본다. 그러니까 나의 근로소득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기 보다는 하루하루 불끄기 바쁜 삶이라니, 택시타는건 아까워도 치킨먹는건 안아깝다는 이상한 경제관념 때문에 여지껏 고생중이다. 하늘에서.. 3만원이 뚝 떨어졌음 좋겠다. 아 진짜 이상하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아까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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