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일상
퇴사를 했다.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취미는 퇴사하기 특기는 일 구하기라며 경솔하게 떠들고 다녔다.
취업률 상위에 속해 있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덕에 어느 정도 경력이 있으면, 이직이라던가 재취업은 타 직군에 비해 크게 어렵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직군을 경험하고 싶은 호기심도 큰 반면 막상 전직을 하고자 하면 포기해야 할 일이 많아-혹은 타 직군 지원자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나의 능력 및 자격으로-여러번 망설이고 있었다.
퇴사를 하면서 '내 이번에는 다시는 간호계에 발을 들이지 않으리다'라고 다짐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10여년 전 이었고, 그리고 또 한번은 이번이 되겠다.
바로 이전 직장에서 받은 상처가 크게 아물기도 전에 나는 다시 구직을 해야만 했다.
살기 위해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한 뒤로 꾸역꾸역 사전에 고지한 근무일수를 채우느라 정신은 만신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시 구직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번에는 필히 다른 직종으로 이직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들 아니면 접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파트타임으로 간간히 접하고서는 더더욱 간호사의 세계에 있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피기에는 상당히 이기적이었고, 나이가 들어 아집도 세졌으며, 여기저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되려 가는 곳마다 형편을 비교하는 불만투성이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모든 분야에 진심이라, 일을 할 때마다 일 아니면 다른 것은 생각도 못했다. 끝나고도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가슴아픈일은 집에 와서도 내도록 마음아파하면서 전문적이지 못한 모습을 시도때도 없이 보여왔다.
내가 경험한 다른 직군은 그에 비해 별세계였다. 물론 바쁘고 정신없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서로 존중해주는 직장문화, 직원들끼리 보호해주는 듯한 모습, 중간중간 내가 좋아하는 분야들을 눈치없이 마음껏 찾아보고 쳐다볼 수 있는,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것이 목표인.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보고 일을 하는 것 같았으며, 순발력이 필요한 환경이다보니 업무를 대하는 사고방식들도 다들 유연했다. 짧은 파트타임으로 하루 이틀 본 거라 내가 전반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병원처럼 단 몇시간의 체류만으로도 숨이 막힐정도로 고압적이거나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단연.
퇴사를 하고 다음날이었다. 전 직장에서 받은 상처를 천천히 달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10.29참사 소식이 들렸다.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어쩌다 친구랑 현장관련 뉴스와 사진들을 보았는데, 보는 순간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모습에 눈을 감아도 그 모습들이 아른거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병동에선 단 한분의 생명이 지는 것도 가슴아파하던 나에게 150명이 넘는 사망자는 그리고 그 참극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직감하면 정말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과연 그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었을까. 죽을 힘을 다해서 무언가를 했으면 그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무력감과 함께 비통함이 밀려왔다. 일주일 정도는 사고의 여파로 너무나도 힘들었다.
다른 일을 찾아 구직하려던 나는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의료진과 시민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병원일을 찾기 시작했다. 평생을 싫어했던 내 직업이 어쩌면 그런 순간에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다시 사람살리는 일을 해야겠다 다짐했다. 불평불만 하지않고 남을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이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참 어리석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속죄였다. 그냥 내가 뭐라도 되고 싶었던 치기어린 마음으로 가진 속죄의식이었다. 아직 누군가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이력서를 쓰고 자소설을 썼다.
다양한 경험을 한 나는 어느직무에나 어울리고 순발력 있게 대처 가능한 인재가 되었으며, 끝나고도 관련자료를 찾아보는 나는 늘 배우는 자세가 된 사람이 되었고, 환자의 유명을 달리하는 모습에 가슴아파하던 나는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으로 둔갑이 되었다. 말도 안되는 나를 소개하는 소설을 쓰고 이력서를 쓰다보니 현타가 여러차례 왔다. 직장은 또 왜이렇게 많이 옮겨다녔으며, 이거저거 한다는 명목으로 뭐 이렇게 많이 해놨는지. 아니나 다를까, 구직이 딱히 쉽지도 않았다. 애매한 경력으로 애매하게 나이가 많은 나는 병원들이 선호하는 인재는 아니었다. 뭐 기가 차게 예비합격 이런것도 되었다(사실상 탈락이다, 그러나 불합격 문자보다 더 기분나쁜 예비합격 문자였다). 대학교도 아니고 참 재밌는 병원 세상이다.
아침녘에 잠이 들고 점심이 훨씬 지난 시간대에 일어나길 여러번이었다. 그 시간에 일어나면 절망감이 말도 못하게 크다. 의무적으로라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옷을 입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짬뽕도 먹고 싶고 라면도 먹고싶었다. 여차저차 커피 가게 가서 테이크아웃을 해 오는 길에 부쩍 건강하게 먹고 싶어졌다. 그냥 이렇게 시작한 하루에 인스턴트로 버무려진 식사를 하게 되면 하루 종일 무엇도 득이 되지 않았다는 짓을 했다는 생각에 자기혐오가 더 깊어질 것만 같았다. 구직중에는 자존감이 계속 떨어진다, 그나마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었다. 그래서 건강하게 먹고 싶어졌다. 세상도, 회사도 지금 나를 딱히 원하는 곳은 없겠지만 나를 위해 건강한 요리를 해 조금은 희미해진 영혼의 불씨를 살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일로 인해 스스로가 잠식 되었을 떄는 글 조차 써지지 않는다.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선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나는 글도 쓰고, 무화과 요리도 해먹고, 산책하러 나가서 커피까지 사와서 세 개의 일이나 한 사람이 된다. 이따 저녁엔 오랫만에 요가를 해야겠다. 이정도면 오늘 하루 꽤나 열심히 산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