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생활 1년 6개월차만에
한산한 도로가 더 익숙해지고, 아직은 한국말이 훨씬 익숙하지만 들리는 영어가 크게 어색하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치면 자연스럽게 sorry나 excuse me가 나오는 미국 생활 일 년 반만에 한국을 찾게 되었다.
한국을 가게 된 계기는 순전히 홧김(?) 이었다. 올해 초 꽤나 괜찮게 머릴 한다는 한인 미용실에 가서 머릴 잘랐는데, 팁포함 100불의 금액을 내고도 너무나도 마음에 안들었던 머리 때문에 언젠가 한국을 가게 된다면 내가 늘상가던 그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오겠다는 다짐이 강해지던 차였다. 당시 만나던 친구와 누가 먼저 싸게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나 내기 비슷한걸 하다가 꽤나 저렴하게 비행기 티켓도 구한터라 겸사 겸사 한국에 가게 되었다. 결국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와는 헤어져서 혼자 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미국 간호사를 하면서 좋은 점이 또 있다면, 눈치 안보고 베이케이션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 크게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한 2주 정도만 머물기로 했고, 휴가는 3주를 썼다. 미국에 돌아와서 한 일주일 정도 푹 쉬다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장기휴가를 가는 바람에 한국행을 동료들에게 알려야만 했고, 이곳에서 한국 뷰티 트렌드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동료들에게 한국 화장품을 얻어다달라는 특명을 받은 채 겸사 겸사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나도 안 신났다. 비행기를 타면서 하나도 안 신났던 여행이 이번 포함 딱 두번 있었는데, 오래 전 서핑트립가겠다며 혼자 제주도를 갔을 때와, 바로 이번 한국을 갈 때였다. 한국이 싫어서 도망온 주제에 이렇게 빨리 한국에 가게 될 줄이야.
본가가 서울이 아니었으나, 서울에서 오래 생활한 터라 도착하자 마자 미국을 가기 전 살던 동네에 호텔을 얻어놓고 자주가던 브로우샵과 헤어샵부터 갈 예정이었다. 넉넉하게 예약을 잡아놨지만,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빨리 인천공항에서 잠실까지 가야하는 상태였다. 하필 퇴근시간대라 리무진을 타도 막힐 것 같아 지하철을 냅다 타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탄 10분만에 나는 다시 LA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왔다.
사람이 한가득인데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 자랑스럽게 차고 있던 사원증. 그래 이거였다. 한국에 오니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게 실감이 났다. 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차고 있던 사원증을 맬 만한 회사를 못다니던 나는 한국에서 루저였던 것 같다. 매일을 힘들게 일하고 시루떡같은 지하철에 몸을 내담으면서 좀비처럼 걸어다니던 내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퇴근하고 나서 자기계발을 하겠다고 기웃대었고, 남들과 비슷하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꼭 뒤처지는 내가 계속 뒤처질 것만 같아 발버둥을 치던 내 과거 모습들이 생각났다. 전혀 행복하지 않던 그 시간들 하루하루가 숨막히던 그 시간들이 떠오르며, 지하철에 가득찬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히던 건지, 그 생각 때문인지를 분간 못할 때 즈음 내릴 때가 되었다. 미국에 고작 1년 반 있었으면서 그래도 몸에 익숙해 졌다고 사람들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못내릴뻔 한 순간 아차 깨달았다. 여기는 어깨부터 들이밀고 봐야한다는 것을. 짐이 있으면 열차안에 던지고 봐야할 것을. 어쩌면 이렇게 바쁘게 숨막히게 사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이 가장 빠른 시간내에 풍족한 나라가 된 것임을
브로우샵 예약은 30분 단위었지만 나는 15분 정도 지각을 했고, 노쇼나 지각은 절대 불가한다던 원장님은 나의 사정을 알고는 예외를 허용해 주었다. 그리고는 손님이 공항에서 늦게 온다는데 어쩔수 없지 않냐는 말을 좋게 돌려서 이야기 해 주었다. 5분만에 왁싱을 마무리 한 손이 빠르고 실력이 좋은 원장님과 미국 살이에 대한 빠른 캐치업을 한 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몇천원을 팁명목으로 조금 더 송금해 주고 맘 편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볼지 모르지만 안녕히 라고 전하며
예약했던 호텔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평일 저녁이었는데도 정류장에 빼곡한 사람들과 거리에 빼곡한 차들. 한없이 엘에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달러 강세로 생각보다 싸게, 과거에는 예약도 못할 호텔을 예약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호텔로 향했다. 저녁엔 잠깐 같이 일했던 동료를 만나기로 했다. 이 친구도 미국 간호사 수속중에 있었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의 미국스토리를 듣고 싶어했다.
함께 근처의 밥집을 갔는데 대기 40팀. 하하 한국에 온게 다시 한 번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식당을 찾아가서 함께 밥을 먹고 약소하게 친구에게 선물을 전해주었다. 여전히 한국의 임상에서 많은 일에 치이는 친구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미국의 임상도 그렇게 판타스틱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감없이 현실을 말해 주곤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일년 반만에 한국을 왔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익숙했고 늘상 살던 동네 근처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이 곳을 일년 반이나 떠나 있었던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국에 간다니 나와 같은 시기에 랜딩한, 혹은 이미 이곳에서 생활을 했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좋겠다고 했지만, 친구들과 가족을 만나는 것 외에는 크게 신날일이 없었던 지라 머무는 2주동안 하루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 왔다. 가뜩이나 중간에는 비도 너무 많이와서 캘리포니아의 쨍쨍한 해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리운 날들이 계속 되었었다.
그러다 미국에 오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고작 1년 반을 떠나있었던 한국을 다시 갔을 때는 그렇게 익숙했는데, 2주를 떠나 있었던 미국은 다시 생경했다. 화창한 날씨, 드넓은 도로 그래 이거지 하면서도 다시 미국으로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다녀오면 더 힘들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것만 같았다.
한국도 미국도 이제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지구 위에 나만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들이 늘상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일년 반 고생하면서 보금자리를 얻어 놓고 이곳에 그나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보니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그저 어디론가 표류하듯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다음주면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것이었고, 불행중 불행은 이번 한국 여행에 돈을 너무나도 많이 썼다는 점이다. 하하
어쩌면, 내가 흔들리는 근본은 지금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와서 사실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그게 크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남들 눈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그저그렇게 지내고 미국에서도 이름없는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마음이 힘들거나 복잡하지 않은 것은 아직은 내가 이곳을 잘 몰라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에서의 간호사의 인식은 어느병원에서 근무하건 한국보다는 높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서 한국에서 내가 이름있는 병원에서 혹은 이름있는 직장에서 일을 한들 행복할까 생각해 봤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지하철에 계속 끼어서 평생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으며 아파트 한채도 사지 못하는 그런 삶이 머릿속에 빤하게 그려졌다. 그럼 이곳에서 내가 이렇게 아시안 여성 이주 노동자로 사는 것은 행복할까 했을 때, 행복하진 않아도 한국보단 숨통이 트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여기서 이 자리에 있어도 가장 마음이 편안한 상태임을 매번 느끼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인식? 아니 그냥 나는 여기서 이것밖에 안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만해도 충분하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인끼리 만나면 누가 연봉을 얼마받네 절마버네 하는데, 그런 그들이 크게 부럽지는 않다. 어쩌면 사고의 유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도 벌고 나도 노력하면 그만큼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아도 나는 충분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보이는 이 햇살과 시원한 커피가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국은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빠른 성장과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나라다. 한국의 화장품 시장 및 각종 시장들은 어느것을 해도 기본 이상이기에 놀라울 정도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저렴한 가격들은 수많은 인력들을 갈아 만든거라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파지는 바이지만)한국에 있는 동안 만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외국을 나가면 한국이 그렇게 자랑스럽다던데, 국뽕도 많이차고, 언니도 그런거 같은데요?" 그렇다 나는 우리나라 한국이 자랑스럽다. 나와보니 더더욱 그렇다. 한국 사람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없고 잘하는 사람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살래?라고 하면 나는 못살겠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하루 왠종일 근무에 치여 퇴근하면서도 저녁이 없는 그런 삶은 아무래도 나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 몸을 그득그득 실으면서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한국에 나는 살아남지 못해서 미국으로 도망을 온 것이다. 나약한 나는 이곳에서 그렇게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숨은 쉬고 살 수 있어서 그래서 좋다. 언젠가 한국도 약한것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유연해 진다면 그땐 또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언제 한국을 다시 갈 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굳이 안가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캘리포니아는 햇살이 좋다. 햇살엔 세금이 없다는 말이있지만, 캘리포니아의 세금은 햇살 세금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다. 미국에 온 지 이틀차라 아직도 여행하는 기분이다. 오늘은 좀 다른 여행을 해 보길 바라면서 밖으로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