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 온 뒤로 시차 적응에 애를 먹던 중이었다. 남들의 낮이 나의 밤이 되고 나의 밤은 남들의 낮이 되었다. 한 일주일 정도는 매일 새벽에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남들보다 시간을 오래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었다.
내가 힘들고 괴로운 것들, 내가 좋다고 여겼던 것들 모두 시간을 만나면 그 성상이나 특징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 적은 있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아쉬워서 소중한 느낌보다는 이 시간이 지금 이 속도로 가는게 너무나도 알맞고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더 소중함을 느끼곤 했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나, 그러했던 것 같다.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고 싶어 했고 그리고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지구 어딘가에 있어도 내가 나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는데, 나다운 나의 버전이 마냥 긍정적인 버전은 아닌 것임을 또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많이하고 짧은 견문을 계속해서 넓힐 수록 깨닫는 것은 슬프게도 사람은 크게 안 변한다는 것이고, 가지고 있는 성질을 어떻게 잘 매끄럽게 다듬어 내어 사회 속에서 융화되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나 정도로 체득되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온 지 이제 약 일년 하고도 오개월 차,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시간은 발빠르게 유영해 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느낀 아주 귀중한 느낀점은 어떻게든 시간은 간다는 점이었다. 이 시간과 친해진다면 버티는 시간이 무료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을 잘 버티고 견디고 버무리면, 고대로 잘 쌓여서 내것이 되어 소화가 된다 생각하니 참 즐겁고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출근하다가 갑자기 12시간 근무를 할 생각에 턱하고 숨이 막히다가도, 명상 한 번 하고 심호흡 한 번 하고 이 시간이 어떻게든 가게 되어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인연들 가운데에서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던 가운데에도, 시간은 언제나 흘러가게 되어있고 그 시간의 지남과 함께 관계의 길이 선명하게 보여지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편해졌다.
이로 인해 억겁이 있어야 생긴다는 인연의 뜻 또한 소중하게 느껴지면서, 인연이면 머무르고 아니면 떠나가리라 생각하니 나와 함께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해 크게 경계심을 품거나 안좋은 마음으로 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손바닥으로 모래알을 쓸면 날아갈지도 모르는 모래알 같은 인연들이 모여 우리는 시간속에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며 지낸다는 점을 알게 되면, 이 모든 인연이 어쩌면 소중하지도 혹은 꼭 그렇지 않아도 다 작은 흔적 하나 남기고 가는 것임을 이제는 조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달빛이 비치는 밤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했었다. 벤쿠버에 살 때 부터 생겼던 습관이었는데, 외롭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밤을 환하게 비추는 달빛을 볼 때면 저 달이 지구 반대편도 비출거고 거기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연결고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그런 달빛에 위로를 받으며 걷던 밤도 시간의 흐름을 사랑하는 지금의 나도 모두 같은 나지만 또 다르게 세상을 대하는 나임을 느끼며 꾸준히 나처럼 살자고 다시 다짐하는 바이다.
마음이 소용돌이를 쳐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꼬리를 물고 비집고 들어와도 일찍 일어난 김에 운동도 한 번 하고, 자쿠지도 다녀오고 집안 청소도 하면서 시간을 견디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한 바이다. 그런 시간을 잘 유영하다 보면 언젠가 그 시간에 또 맞는 사람들이 들어와 앉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어쩌면 성장한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시간과 잘 지내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거스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는대로 그렇게.
PS. 예전에 히어로 영화를 보면, 물 불 바람 땅 시간 이런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만 해도 시간을 조종하는 파워를 가지는게 크게 와닿지 않는데 지금은 시간 파워를 가진게 제일 짱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