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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Wild West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것 같은 미국간호사의 현실

by 한설홍

오늘 처음으로 도어대시를 혼자 해 봤다. 나는 미국 간호사 경력 만 1년 4개월 차다. 개개인의 경력과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미국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미국에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사로서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지내는 중이었다.


한 시간 반정도를 도어대시를 했고, 오더 대기 시간 합쳐 두 시간 정도 대략 들은 도어대시 수입금은 39달러였다. 오다 가다 오더만 딜리버리 해 주면 되는 것 같아서 어카운트는 예전에 만들어 놨었는데, 안전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 한참을 고민하다, 통장 잔고를 보고 나니 도저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차를 끌고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녔던 거다.


쉬는 날에 이렇게 도어대시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2주간 병원에서 3일만 일했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해 시급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3일 근무한 2주급은 나의 고오급 아파트 렌트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전에는 모아둔 돈으로 여차저차 굴러가면서 아껴가기도 했는데, 한국을 다녀온 이후로 재정상태가 엉망이 된 터라 이제는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가면서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할 판이 되었다.


물론 스케줄에 들어간 대로만 일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요즘처럼 환자가 적어서 계속 캔슬이 되면 근무 시간에 따라 돈을 버는 나는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게 마련이다. 환자가 이렇게 적은 적은 지난 6월 부터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원 환자가 계속 줄기 시작했고, 2주간 72시간 full paycheck을 받은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적게 받으면서 적게 쓰고 살자가 나의 모토였는데, 하필이면 연말이라 땡스기빙에 크리스마스에 이것 저것 끼는 바람에 가난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시급이 40불이 넘는 나도 이런데, 시급이 20불인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캘리의 물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병동의 간호사들은 대부분 투잡 쓰리잡을 하고 있긴 했다. 이 곳에서 풀타임 다른 곳에서 파트타임을 하며 나름대로의 safety net을 만들어 놓고, 어느 곳에서 풀타임으로 근무를 못해도 다른 곳에서 커버가 되는 수준이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시니어 간호사들이 나같은 주니어, 뉴그랫 간호사들의 생활비까지 걱정해주기도 했다. 너무 캔슬이 자주 되어서 괜찮냐 다른 병원을 알아봐줄까 하며 고맙게도 신경을 써주신다. 이비 지난 6월 부터 지속된 캔슬에 몇몇 친구들은 정말로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채용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오늘 이력서를 내면 다음주중으로 연락이 와서 면접보고 채용 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적어도 2-3개월 정도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와서 내가 급한불을 끄겠다고 이력서를 마구잡이로 넣는다 한 들, 이력서 검토 - 스크리닝 인터뷰 - 실무진 인터뷰 - 온보딩 과정까지 아마 채용 시기는 빠르면 다음 달, 늦으면 내년 1월이나 될 가능성이 크다.(물론 레퍼런스가 있으면 다르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조용히 이동하고 싶어서 딱히 주변에 알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곳에 오래 산 친구들도 이직을 할 때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알아보는 편이곤 하다.


미국에서 1년 경력이 생기면 나의 앞으로의 행보는 무적이 될 줄 알았는데, 또 그만큼 골라서 이직 장소를 찾느라 오히려 작년에 미국 막 왔을 때보다 더 일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또, 요즘들어 캘리 간호사 오프닝이 크게 좋지 않다는 것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 찾다하니 도어대시를 하게 되었다.


쉬는 날 도어대시를 하면서 느끼는게, 이제 진짜 미국사람이 된 느낌도 들었다. 뭣 모르고 30분 거리의 아주 먼 동네까지 배달을 가기도 했고, 동네에서 자주가던 카페 점원에게 배달을 하기도 했다. 고객으로 가다 막상 배달부로 가니 조금 웃기긴 해도, who cares 여긴 한국도 아니고 아무도 신경도 안써서 아주 재밌게 일을 마치고, 지쳐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 연말 파티에 입을 드레스 고른다고 ROSS 가서 옷을 뒤지니 미국에서 억척같이 살아가는 노동자 느낌이 더 들었다.


쉬는 날 도어대시를 하겠다니 동료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까무라치던데, 이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지.. 간호사를 그만두겠다고 미국와서 간호사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가 돈때문임을 다시 상기하면서, 그렇게 안가겠다던 홈헬스를 하는게 나을 것 같다며 다시 인디드와 링크드인을 뒤지는 중이다.


결론, 이왕 차타고 운전하고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야 하는 것이라면 면허를 살려서 홈헬스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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