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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Karma

by 한설홍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케이스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간호사를 꾸준히 한 덕분에 꾸준히 수입이 있었으며, 생활력이 강한 덕분에 - 남들에게 손을 벌리지 말자 라는 것이 인생의 모토- 투잡을 하건, 쓰리잡을 하건 나 하나 건사하고 게다가 남에게 베풀 수 있으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나는 베푸는 것도 좋아했다. 같은 값이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부족하게, 덜 고민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라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눈에 띄는 몇명은 하나라도 내게서 더 얻어가려는 하극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냥 불쌍한 사람 떡 하나 더 주자는 마음으로, 저런 사람들 곁에는 나같은 누군가가 없겠지라는 마음으로, 혹은 이용해 먹고 가거라 대신 앞으론 안볼터이니 하고 분쟁없이 조용히 차단 버튼을 누르는 나였다.


10년 정도를 봤던 친구들이 미국으로 놀러를 왔다. 나보다 10살은 족히 어린 친구들인데, 그 때 부터 꾸준히 나와 함께 절친처럼 지내던 옛 직장 동료들이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마음속의 해방감 같은 것도 느끼고, 내가 얼마를 쓰는가와는 상관없이 그들과 함께하는 추억들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도 흔쾌히 방을 내주고, 라이드도 자처하곤 했다. 고맙게도 그들은 내가 말을 안해도 고충을 알아주고, 자신들이 각자 일하는 위치에서 베네핏이 있을 때 마다 내게 선뜻 권해주기도 하는 그렇게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었다.


엘에이에서 베가스 까지 가서 베가스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항상 좋은것만 해주고 싶던 친구들이라 고든램지 헬스키친엘 들렀다. 미국에 온만큼 맛있는걸 대접해 주고 싶어서 비싼 식당을 고르긴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비싼거였다. 그래도 이왕 쏘는거 시원하게 쏘자라는 생각으로 주문을 하기로 했다.


예약을 안하고 간 탓에 바에 앉게 되었고, 내가 앉게 될 좌석 바로 옆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백인 할아버지가 혼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너무 옆이라 공손하게 할아버지에게 'would you mind if I seat next to you?'라고 망설이다 물어봤고, 할아버지는 흔쾌히 괜찮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자리에 앉으면 팔까지 부대낄 정도의 거리라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감사하게 앉아서 친구들과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보고 너무 비싸서 놀래 말이 없어진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살짝 놀라긴 했지만 -인당 100 불정도로 예샹하고 왔는데, 저녁이라 가격이 조금 더 비쌌던 것 같다-그래도 괜찮은 척(?) 하면서 세트와 각종 앙트레, 음료까지 주문을 했다.


그리고 나서 잠깐 짬이 나서 옆의 할아버지에게 여기 자주 오시냐, 뭐하고 지내셨나 등등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그냥 미국사람들처럼 말이다. 할아버지는 트레이더 쇼에 왔다고 했고, 나는 엘에이서 왔고 이친구들은 한국에서 왔다면서 이래저래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고든램지를 좋아하시는 듯 했으며, 이분은 바텐더에게 램지씨가 언제왔었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것을 들었다. 식사를 다 마쳐갈 무렵의 아저씨는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우리에게 have fun 이라고 하고 자리를 뜨셨다. have a good day 로 인사하고 앉아서 받은 에피타이저를 열심히 셔터에 담는 순간 바텐더가 와서 이야기 했다.


"옆에 계셨던 분께서 여러분의 밥값을 모두 내셨습니다. 여기서 일한 지 3년정도 되었는데, 이런 케이스는 매우 드뭅니다.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내셨다고 하면서 내고 가셨으니, 부디 즐기시고, 혹시나 우리 직원들을 위해 추가로 팁을 주시거나 결제하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됩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와 내친구들은 충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화로 자그마치 50만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내 친구들 역시 '언니, 미국사람들 원래 다 이래요?'라고 물었다. 나 역시도 너무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식당에 오기 전 카지노에서 딴 100불을 팁으로 주고 가려 그랬는데, 이 저녁이야 말로 내겐 잭팟같은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 펼쳐졌다는 생각에 살짝 기억을 되돌려 옆테이블 아저씨가 결제 할 때 즈음 직원과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직원이 계속 'are you sure?'라고 되물으며, 그 아저씨에게 여러가지 칭찬과 찬사를 퍼붓던게 떠올랐다. "Good Karma is existing"이라고 하며 세상과 우주의 평화와 행복 그리고 영원한 축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말을 연신 하길래, 뭔가 팁을 많이 하셨나보다 했는데 그게 우리 밥값을 낸 것이었다니..


그 아저씨의 그런 선의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고, 속으로 무던히 사람들을 경멸해 왔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이 사람을 만난 것은 내게 인생을 다시 살아보라고 주는 가르침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큰 행운이 있으면, 그만큼의 불행이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나의 고통은 총량 법칙에 따라 늘 수반되어야 한다고. 인생의 행운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고통처럼 여겨왔다. 그래서 나역시도 베푸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생각하며 베풀며 살곤 했는데, 이분처럼 배포가 큰 사람을 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내가 가지려는 것에 대해 집착하고 소유하고자 했는가. 남에게 준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바라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얼마나 째쨰하게 이것저것 따지고 있었던가. 길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한턱을 크게 쏠 정도의 사람이라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할까. 얼마만큼의 아량이 있어야 할까.


며칠을 생각에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 밤중에 일하며 환자들에게 짜증이 연신 날때도 어쩌면 이아저씨를 생각하며 그래, good karma 가 언제나 good karma 를 불러온다 생각하며 임해야지 싶었다.


친구들은 내게 '언니가 그 분에게 공손하게 묻고 먼저 말걸어줘서 기분이 좋으셨나봐',언니가 늘 좋은일을 했기 때문이야', '내가 생각하기에 언니는 내 주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착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 하며 치켜세웠지만, 그건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이 선하기 떄문이기도 하다. 선한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을 만난다.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운'을 만들기 위해 good karma를 쌓으려고 노력해 오면 언젠가는 좋은 일들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게 내 전부를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냥 나를 믿고 선을 행하자. 선을 행하면 그걸로 곧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행복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Good Karma is existing. 다시 한번 우리의 저녁을 세상에서 가장 잊지 못할 저녁으로 만들어 준 Rob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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