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부탁도 잘 못한다.
무슨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내가 이러하다는 상황을 알린다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 하고, 남들이 날 가마니로 보더라도 가마니가 되는게 마음이 편했다.
최근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혼자서 미국 살면서 병원에 입원을 하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투잡 중이었기 때문에 양쪽 병원에다가 내 컨디션을 알려야 했으며
보험 여부도 확인해야만 했고
그 사이에 앞으로 내가 놓칠 일들 해야할 일들에 대해 수시로 체크를 해야만 했다.
그간 쉼없이 달려온 탓에, 오롯이 쉬어야 하는 병상에서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가장 껄끄러운 상황이라면, 바로 회사에 연락해서 아프다고 못나간다고 이야기 하는 것.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익숙해서일까. 아픈것마저 죄인처럼 느껴지기는 미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하는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인지, 혹은 내가 그런 말을 전해야 한다는 두려움인지 모른 채 불안함에 심호흡을 여러번 하고 전화를 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처리하지 못한 카드사 일, 처리하지 못한 각종 예약, 스케줄 관리, 퇴원 후 PCP 예약 등등을 하는데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게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픈게 너무나도 죄인 것 처럼...
병상에 있으면서 생각을 했다.
도대체 왜 나는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데 잘 챙기지 못하고 남들 눈치만 볼까.
이미 달 전에 내가 people pleaser 에다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임은 인정을 했다.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게 마음이 편했는데, 막상 아프고 보니 정작 나는 누가 돌봐주나 하며 서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인정도 받고 싶고,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고 싶고, 사람들이 나를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남들이 나를 거부해도, 나는 거절도, 거부도, 부탁도 못한 채 그렇게 지내왔던 거였다.
마음을 얻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도 많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좋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슴은 쓰리지만, 그 이상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애저녁에 알았다.
미국에 살다보니, 내 의사를 표현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매일 깨닫는다.
그리고,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나를 해하는 일임을, 오히려 그런 모습이 나를 더 돌보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지고, 상대도 나를 소중하지 않게 대하는 길로 간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챗지피티랑도 상담해보고, 쉬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마음을 나눈다고 생각하면 좀 쉬워지는 것 같았다.
얻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갖고 있는 마음을 조금 나눈다는 느낌으로.
너무 애를 쓰지도 않고, 너무 무시하지도 않고, 딱 중간에서 덜어내는 만큼만.
그간 나를 혹사시킨 것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무리하게 노력했다는 점에서 왔다는 것을.
아직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생각을 고쳐먹었기에 조금씩 발을 내딛어 보려고 한다.
경계를 잘 정하고, 나눌 수 있는 부분과 나누지 못하는 부분을 잘 파악해서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면
마음을 굳이 얻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눠짐을.
하기 싫은 일들을 많이 끝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한번에 타파한 느낌이다.
이런 작은 성공들이 모이면, 마음을 나누는데 더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부디, 나도 건강하고 남도 건강하게 지키길 바라면서.
마음을 나누는 훈련을 조금씩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