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직장에 입사한 지 8개월 차 되는 날. 교대근무라는 특수성으로 '야간근무자 신체검사'라는 것을 받아야 했는데 회사에서 공가를 내어주기 때문에 주간 근무 날에 하루를 쉴 수 있었다. 남들은 다 출근하고 열심히 업무와 씨름을 할 시간,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그 느낌은 행복하더라.
그런 간만의 휴일에 나는 동기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왕래가 잦지 않고 근무도 겹치지 않아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도 없었고, 밥을 한 끼 하지도 못한 사이라 '동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 간에 왕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동기도 우연찮게 내가 신체검사를 보는 날 주위에 쉬었기 때문에 서로가 피곤하지 않은, 온전한 날 점심에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브런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직장 이야기와 서로의 삶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에 '브런치' 이야기도 우연찮게 나왔다. 평소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성격이라 블로그를 관리한다고, 브런치도 작가가 되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더니 신기해하던 그 모습. 그렇게 서로의 인생사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생각한 내 삶과 비교해서 그녀는 정말 많은 경험과 여러 나라들을 의미 있게 갔다 왔더라.
길다면 길 수도,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 동안 겉핥기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재밌다고 느낄 정도였다면 틀림없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브런치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면 뭔가 그럴 거 같아."
내가 블로그를 하며 저런 느낌을 종종 느꼈다. 그래서 더욱 내 존재를 숨기고 내가 아닌 '그'로 글을 쓰거나 나라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정보성 글만을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몇몇은 내 블로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과 은연중에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신기해하고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얄궂은 친구들은 놀려했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때라서 벌거숭이 임금님이 된 것처럼 부끄러웠던 기억을 지금 되뇌어보면, 그 당시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는 블로그 활동을 잠시 접었다.
22살에 사진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중 발레에 관심이 많았던 누나가 브런치를 통해 책을 발간한다는 것을 듣게 되면서 브런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글쓰기에 재미를 그렇게 붙이지 않았던지라 '와, 저런 게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평소 사진을 좋아했어서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내가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인도 여행을 갔다 온 후부터였다. 그때는 그 좋았던 인도에서의 기억과 사진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보단 내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고나 할까? 블로그에 인도여행기를 완결했을 때 조회수는 각각 1000을 넘어섰다. 가끔 댓글에는 '사진이 너무 좋다', '글이 너무 재밌다'라는 평들이 달렸는데 그런 반응들을 보니까 글을 쓰는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어느 곳을 가던지 사진으로 장소를 남기고, 그때의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자그맣게 기록을 해 놓았다.
이렇게 어렸을 때는 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면, 요즘은 하루하루의 푸념과 고민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게 부쩍 많아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털어놓지 못하거나, 내 스스로만이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고민들 말이다. 특히나 근래에는 나 자신만의 고민이 아닌 사람 간에 관한 주제가 많아, 글을 작성하고 나서도 발간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내 개인적인 생각을 공개하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적어도 어딘가에는 그 추억을 정리해놓고, 괜찮아지면 글을 작성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