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나는 유명 호텔 주방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거나, 이름 있는 셰프 밑에서 기술을 배우며 요리로 인정받는 삶을 꿈꿨다. 그게 당시 내가 그리던 ‘성공’의 모습이었다. 누구나 속한 분야 안에서 가장 좋은 모습이나 이상을 상상하면, 자연스레 ‘성공’이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내 통장에는 변변한 잔고가 없었고 당장의 생활비조차 걱정해야 했다. 그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목사로서 성공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당시 내가 본 목사의 성공은 크고 안정된 교회에 부임하거나, 교수직에 오르거나,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불편했다. 교회라는 무대만 다를 뿐, 성공의 본질은 세속적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성공’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생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은 감정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회의 재정 구조와 후원자, 정치적 관계는 목사의 삶과 긴밀히 얽혀 있다. 어떤 메시지가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다면, 그 메시지는 쉽게 덮인다.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무난한 말만 반복되는 설교가 된다. 그 순간 목사는 사명에 따라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구조에 순응하는 화자가 된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과 언어를 주셨다. 목사란 그 개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다. 그런데 개성이 지워지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반복해야 한다면, 나는 목사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일은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개성과 언어를 지킨다는 것은 자기 고집을 부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체의 다양성과 정서를 존중하는 것은 목사의 필수적인 태도다.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에 의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되는 ‘구조적 침묵’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전도사직을 내려놓게 된 마지막 계기도 바로 그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섬기던 교회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권사님이 계셨고, 오랜 기도 끝에 남편을 교회로 인도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과거 조직의 보스로 활동하며, 갈등 끝에 살인을 저질러 10년간 복역한 이력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담임목사와 나뿐이었다. 나는 그를 ‘형님’이라 부르며 함께하려 애썼다. 그러나 어느 날 담임목사는 “죄에도 경중이 있다”는 설교를 했다. 누구를 향한 말인지 분명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교회를 떠났다. 나는 담임목사에게 사과하셔야 한다고 여러 번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전도사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매주 그의 집을 찾아가 가정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지켜주려 애썼다. 그 선택의 대가는 컸다. 사역지를 잃었고, 공동체와도 멀어졌다. 보상도, 박수도 없었다. 오해와 침묵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일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목사가 되려 하는지를.
나는 소신을 지키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선배 목사들을 여럿 보았다. 어떤 분은 주식에 몰두했고, 또 어떤 분은 보험 일을 하거나 건설현장에 나섰다. 그 책임감은 존경스러웠지만, 그 결과의 삶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배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구조와 생계, 그리고 소신을 동시에 지켜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고.
그 결론이 바로 자비량 사역이었다.
내가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나의 언어와 나의 개성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목회의 방향이며, 목사로서의 진정한 성공이다. 성도의 수가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로서 설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설교에 귀 기울일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자비량 사역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과 교회, 두 영역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목사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지금 이 시간이, 어쩌면 내가 아직 목사가 되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