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치

불편한 감정들

by 김승민

나는 교회에서 비롯된 불편한 감정을 감내하는 역치가 낮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목사와 성도에게 기대하는 바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기대감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기에 ‘의사다움’이 필요하고, 교사는 한 사람의 삶을 가르치기에 ‘교사다움’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목사와 성도는 비록 직업은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윤리와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나는 오랫동안 ‘목사다움’과 ‘성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해 왔다. 다소 직설적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쪽팔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목사는 말과 행동이 늘 주목받는 자리이기에, 삶과 말의 일치성은 곧 목회의 본질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모교회 없이 여러 교회를 거치며 다양한 사역자와 성도들을 만났고, 그들의 낮은 수준의 행동들에 실망했던 경험이 쌓여 갔다. 그 결과 교회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과 갈등을 감당하는 내적 역치는 점점 낮아졌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더 빨리, 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세상에서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감정을 조율하며, 갈등을 최소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교회는 ‘죄인’이라는 개념 뒤에 숨어, 교묘하게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고집, 무례와 판단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런 공간에서 그런 사람들을 품고 이해하고 감당해야 하는 게 목사의 일이라는 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목사나 성도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힘들었던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내게 불편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나는 잠시 그 비행기에서 내려와, 조금은 거리를 두고 그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과 낮은 역치를 자극했던 상황들에서 벗어나, 오히려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면, 지금의 평안은 또다시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지금은, 목사가 아님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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