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by 김승민


신학을 전공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목사가 되기를 꿈꾼다. 그 과정에서 계속 내 안의 욕망과 마주하고 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걸 그대로 주신 적은 거의 없었다. 항상 하나님만의 방식으로 주셨고, 그게 고맙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은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원했던 집, 음식, 물건들, 그런 '내가' 바라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고, 그게 결국 욕망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멋 좀 내기 위한 물건들도 있다. 그런데도 더 좋은 집을 찾고, 더 멋진 차를 검색하고, 갖고 싶은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이런 욕망은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그 욕망이 무엇이 됐건,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목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내가, 욕망을 원동력 삼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모순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그 모순의 간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해 보며 자제와 절제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둘을 간략히 표현하자면 못하는 건 자제고 안 하는 건 절제이다. 근데 자제나 절제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뭘 욕망하는지부터 아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걸 모르고 자제나 절제에 대해 얘기하는 건 참 웃긴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교회 분위기나 교회문화들로 인해 대부분은 욕망을 참고 살고 있을 거다. 하지만 자꾸만 억누르면 용수철이 오래 눌리면 튕겨 오르듯 언젠가 툭 터진다. 그렇게 툭 터진 욕망은 더 큰 문제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젊을 때 기회가 된다면 욕망을 조금씩 실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형태야 다르겠지만 욕망을 실현했을 때의 기분은 같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목사에게 절제는 자기 내면을 다스리는 문제이기도 하고, 교회 안에서 윤리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라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가끔은 숨이 막힌다.


내 지난 삶은, 위에 언급했듯 교회 분위기나 문화로 자제만 하고 살았다. 이제야 조금 누릴 수 있게 되어 누리고 싶지만 또다시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고 싶다면서도 여전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참 독특하다. 그래서 반성한다. ‘어느 학교에서 신학을 하고, 어떤 교단을 따르며, 어떤 설교를 할 것인가’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정작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목사의 자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지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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