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서야 신앙생활을 시작해서일까, 나의 믿음은 마치 동화를 믿는 아이처럼 순진하고 곧았다. 설교에서 들은 말은 곧 진리였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확신은 너무도 당연했다.
대학에서 조리학과를 졸업할 무렵, 인생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학점은 만점이었고,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해외 호텔과 국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주일성수를 이유로 그 기회를 포기했다.
이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Dubbo라는 외딴 지역에 가게 되었다. 소수의 한국인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몇몇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고 싶어 했지만, 영어가 되지 않아 현지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들의 사정을 현지 교회에 여러 차례 전했고, 결국 작은 예배 공간을 허락받았다. 지금도 감사히 기억한다. Dubbo Baptist Church.
내 삶에는 신앙 때문에 이런 종류의 선택들이 많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줄 알았다.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순수함이 얼마나 값비싼 것이었는지를.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선택들의 끝에는 늘 힘겨운 노동, 투잡과 쓰리잡, 그리고 자격지심 같은 단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경제적 기반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각종 자격증을 따고, 영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7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밥벌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다시 ‘순수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과거의 순수함이 세상을 몰라서 가능했던 것이라면, 지금의 순수함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태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활의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거창한 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달 가스비와 식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안정말이다.
나는 가난한 목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내게 목사가 되는 것은 꿈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다. 내 꿈을 이루는 일이 아내와 아이의 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과 신학 공부 외에도, 삶의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는 삶의 무게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