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전문가

by 김승민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깊은 신앙과 지식에 놀란 적이 많았다. 어떤 분들은 웬만한 목사님들보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듣다 보면 감탄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기독교전문가’라고 여겼다. 유튜브 기독교 영상 댓글만 봐도 이런 이들이 적지 않다. 신학적이고 논리적인 의견들이 줄줄 이어지고, 각자의 관점도 분명하다. 그런데 같은 주제 안에서도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며, 끝없는 논쟁이 이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주식 투자자들과도 닮아 있다. 어느 한 종목을 두고 어떤 이는 반드시 오른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곧 떨어질 거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보나 관점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이 걸려 있다. 주식이든 신앙이든, 자신이 붙잡은 것이 삶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순간부터, 그것은 단순한 대상을 넘어 ‘존재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투자자에게는 주식이, 신앙인에게는 믿음이 그 이상으로 무거워진다. 긍정적으로는 그 믿음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지만, 부정적으로는 그 믿음이 무너질 때 삶의 의미 자체가 함께 흔들린다. 그러니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그나마 확실해 보이는 무언가를 붙잡고 버티느라 자신이 쥔 것을 좀처럼 놓지 못한다.


나 역시 주식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앞서 가게 두지 않으려 한다. 주식은 말 그대로 소득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투자하고, 등락의 결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며 결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고 나면 복잡하고 혼란스럽던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주식도 신앙도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도, 신앙과 주식이 나를 앞질러 가지 못하도록,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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