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로 살얼음을 걷던 자영업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망동으로 그 살얼음마저 깨뜨려버렸습니다. 비트코인보다 카카오 가격이 더 많이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환율 상승과 수입 물가 압박으로 자영업계의 앞날은 그저 캄캄하기만 합니다.
자영업은 오랜 세월 정치인들의 생색내기 도구로 이용당하고는 버려져 왔습니다. 마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내기철 농촌에 내려가 막걸리 한 잔 받아먹던 모습처럼, 요즘 정치인들은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업체를 찾아 음식 한 접시 받는 모습으로 생색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시장에서 “저를 믿으시죠”라고 쇼를 한 다음 날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자영업이 정권에 의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길이길이 기록될 것입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가 사라지고, 탄핵이 난무하며, 비상계엄이라는 내란 책동이 다시 살아난 데에는 진영 간 대립을 심화시켜 온 87 체제의 고착화가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영업과 소상공인 정책 역시 이러한 진영 간 대립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자영업에 실질적인 활로를 열어줄 실용적 관점보다는 좌파 정책이냐 우파 정책이냐의 브랜드 싸움이 반복되었을 뿐입니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전 국민 25만 원 지급과 전기요금·배달료 지원 같은 논쟁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영업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한마디로 소상공인을 거지 취급하면서 "왼손으로 줄까, 오른손으로 줄까"를 두고 싸우다가 결국 길바닥에 던져버리는 꼴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 간 김에 용산역 아이파크몰에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화려한 대리석과 샹들리에로 꾸며진 푸드스트리트에서 식사했지만, 분위기도 맛도 영 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맥주는 팔면서 소주는 팔지 않아 소맥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결국 용산역을 나와 먹자골목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함지박만 한 양판에 문어, 해산물, 닭 한 마리를 넣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를 노점에서 즐겼습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자영업이란 이런 존재입니다. 소상공인이 사라지고 기업형 음식점만 남는다면 우리의 삶은 아이파크몰의 푸드스트리트처럼 단조롭고 삭막해질 것입니다. 자영업은 소비자의 니즈를 찾아내 창의성과 다양성이 빛나는 부문입니다. 단순히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산업과 국민의 삶에 풍요를 더하는 필수 부문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영업을 위해 일시적인 시혜성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그 정책이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국민 경제 전반에 기여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대립 구조 속의 양당 체제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직 대통령에 의한 친위 쿠데타라는 대혼란을 겪고도, 대통령만 윤 씨에서 이 씨로 바꾸는 식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번 혼란은 그저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극단적인 양당 대립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정치 체제의 등장을 바래봅니다.
※ 지방에서 골목장사를 하는 저 같은 자영업자에게 발언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중앙일보 리셋 코리아 논설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