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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식혜를 준비하며

엿기름부터 유통기한까지, 최적의 조합을 실험하다

by 배훈천


올여름, 식혜 한 잔이 더 간절해질 것이다


올여름, 유난히 더 덥고 지치는 계절이 될 것 같다. 경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작은 사치마저도 고민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사소한 기쁨이 더 소중해지는 법이다. 시원하고 달콤한 위로를 한 잔에 담을 수 있는 음료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혜가 생각났다.


식혜는 단순한 마실거리 그 이상이다. 명절마다 자식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기다림과 정성이 담긴 음료다. 그래서일까. 정성껏 밥을 짓고 엿기름을 거르는 과정이 노동이라기보다 사랑을 전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EC%8B%A0%EC%B4%8C%EB%96%A1%EC%A7%91.png?type=w580 떡맛 좋기로 소문난 손불 신촌 떡집. 모량마을 가는 길에 있다.


좋은 식혜를 위해 먼저 엿기름을 찾다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는 직접 보리를 싹 틔워 엿기름을 만드셨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방앗간을 찾아 품질 좋은 엿기름을 구해야 했다. 떡맛 좋기로 소문난 함평군 손불면에서도 골짜기에 있는 신촌떡집을 찾았다.


시골 방앗간에서 직접 길러 빻아 저온창고에 보관 중이던 엿기름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과는 향부터 달랐다. 말린 보릿가루의 쿰쿰한 냄새가 아니라, 막 빻은 밀가루 같은 신선한 향이 퍼졌다. 아내도 엿기름 봉지를 열자마자 “이건 확실히 다르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물을 우려내니 쌀뜨물처럼 뽀얀 빛이 돌았다. 어머니가 직접 틔워 절구통에 빻았던 그 엿기름에 버금가는 것 같다. 좋은 엿기름을 구했으니, 이제 식혜의 절반은 완성된 셈이다.



%EC%97%BF%EA%B8%B0%EB%A6%84.jpg?type=w580 엿기름이 좋으니 뽀얗게 잘 우러나며 향도 좋다.


무화과 식혜를 만들다


이번 여름에는 전통 식혜에 무화과를 더해 새로운 맛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본적인 과정은 같다. 엿기름을 우려내고, 밥을 넣어 보온 상태에서 6시간 정도 두면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가 완성된다. 보통 이 과정 후 설탕, 생강, 계피를 넣고 끓이지만, 나는 여기에 무화과를 더해 새로운 맛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무화과를 식혜에 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엿기름과 물의 비율을 찾기까지


우선 엿기름과 물의 비율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1:50 비율(엿기름 80g : 물 4L)로 실험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단맛이 약했다. 이제 1:10 비율(엿기름 80g : 물 800ml)도 실험해 보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을 예정이다.


무화과, 어떻게 넣을 것인가?


무화과를 어떻게 넣을지도 고민이었다. 처음엔 생강과 계피를 함께 넣어봤지만, 무화과의 향이 묻혀버렸다. 결국 무화과만 넣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무화과를 어떤 형태로 넣을 것인가? 몇 가지 방법을 실험해 봤다.

✔ 냉동생과를 통째로 갈아서 넣기 → 향은 남지만 풋내가 느껴짐.

✔ 무화과 콩포트 넣기 → 과육이 풀어져 지저분해지고 깔끔한 맛 부족.

✔ 냉동 무화과를 블렌더에 갈아 채로 걸러 넣기 → 현재까지 가장 괜찮은 방법. 하지만 풋내가 남음.


풋내를 없애면서도 무화과의 이국적인 향과 색을 살리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제 남은 실험은 설탕과 함께 절여 숙성한 무화과를 넣는 방법이다. 과연 이 방법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유통기한실 험도 필수


만약 식혜를 병에 담아 판매한다면 얼마나 오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럽병에 담아 냉장 보관과 고온 보관 테스트를 병행하며 실험을 진행 중이다. 식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발효되기 때문에 최적의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것이 필수다.


%EC%9C%A0%ED%86%B5%EA%B8%B0%ED%95%9C.jpg?type=w580 시럽병에 담아 고속실험을 한다. 고온환경에서 3일후에 변질된다면 냉장보관 30일은 가능하다.



올여름, 무화과 식혜 한 잔


더운 날씨 속에서 시원한 식혜 한 잔이 주는 기쁨은 단순하지 않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쌓였던 피로가 사라지고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올여름, 무화과 식혜가 더위와 불쾌지수를 날려버릴 한 잔이 될 수 있도록


실험을 거듭하며 최고의 조합을 찾아가고 있다.


완성된 무화과 식혜를 곧 선보일 수 있기를 바라며.


여름날의 작은 행복, 시원한 식혜 한 잔으로 함께 나누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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