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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재난 시대, ‘산림 자원화’와 민간의 역할

반복되는 산불 재난은 숲을 돌보지 못하는 구조의 결과

by 배훈천

2025년 3월 24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엿새째 이어지고 있다. 산불재난특별지역이 선포된 가운데, 3월 28일 현재까지도 완전 진화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이번 산불로 최소 28명이 사망하고 37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주택 2,250채와 농업시설 등 3,400여 곳이 피해를 입었다. 대피 인원은 4,890명에 달하고, 이 중 955명은 여전히 임시 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 산불은 이제 예외적인 재난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형 재난 사태로 고착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구조적 대응 한계까지 겹치며, 산불은 상시 위험으로 자리 잡았다.


임도 논란, 숲은 놓치고 나무만 따지는 격

산불이 날 때마다 어김없이 임도 논란이 되풀이된다. 부족한 임도로 인해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는 주장과, 오히려 임도가 바람길이 되어 산불 확산을 키운다는 반론이 맞선다.

숲에 도로를 내면 바람의 유속이 빨라지고, 벌채지는 불씨가 옮겨 붙기 쉬운 구조를 만든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임도 논란은, 한국 산림 관리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덮는 수단처럼 반복돼 왔다.

한국의 임도 밀도는 산림청 공식 통계 기준으로는 헥타르당 4.1m다. 하지만 일부 민간 연구에서는 작업임도와 간선임도를 모두 포함해 50m 이상으로 추산되기도 한다. 측정 기준과 해석 방식에 따라 수치는 달라지지만, 문제는 임도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숲 관리와 산불 예방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임도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산림을 자원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 인프라다. 정기적인 하층식생 정비, 방화선 관리, 병해충 방제, 고사목 제거 등 대부분의 작업은 기계 접근이 가능해야 효과적으로 수행된다.

이런 작업은 목재 수확이라는 경제적 동기를 기반으로 지속될 수 있으며, 동시에 산불의 연료 축적을 줄이고 화재 확산을 막는 효과를 낸다. 즉, 임도가 ‘수익을 내기 위한 길’로 활용될 수 있어야, 그 길이 산불 예방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산림을 자산으로, 민간의 책임을 체계화할 때

문제는 결국 ‘임도를 누가 어떻게 쓰느냐’다. 지금까지 한국의 산림 정책은 대부분 공공 주도, 보존 중심의 틀에 갇혀 있었다. 사유림이 전체 산지의 68%에 달하지만, 민간이 산림에 진입해 자율적으로 관리하거나 자원을 활용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허가 절차는 복잡하고, 규제는 촘촘하다. 정부는 임도를 만들고 있지만, 유지 관리에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임도는 ‘길’로만 존재하고, 그 길을 따라 실제로 숲을 관리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숲을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그 관리를 책임 있게 수행할 민간 주체에게 길을 열어야 할 때다. 임업이 가능해야 숲이 정비되고, 숲이 정비돼야 재난도 줄어든다. 공공은 설계를 맡고, 민간은 실행을 책임지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단, 그 전제는 분명하다. ‘자원화는 곧 책임’이어야 하며, 난개발이나 단기 수익 추구와는 분리되어야 한다.


규제를 푼다고 민간이 몰려오지는 않는다

물론 단순히 진입 규제를 푼다고 해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산림 관리에 나설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산림은 대부분 경사도가 크고 접근이 어렵고, 장비 투입과 유지 비용에 비해 당장 수익성이 높은 구조도 아니다.

곧, 민간 참여가 일어나려면 '허가 완화'만이 아니라, 수익성과 공익성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개방’이 아니라 공공이 설정한 조건과 기준 아래 민간이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예를 들어 탄소저감, 생태복원, 산불예방 등 일정한 공공 기여도를 충족하면, 임산물 수확, 탄소배출권,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연계해 실질적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 기반의 인센티브 체계’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로의 전환, 네 가지 핵심 전략

① 법제도 정비: 허가에서 조건부 등록제로

현행 산지관리법은 인허가 과정이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크다. 산림 경영에 진입하려는 민간 입장에서는 초기부터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단순히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다.

조건부 등록제나 사전심사제로 전환해 공익성과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민간에 대해 예측 가능한 진입 경로를 보장해야 한다. 고위험 산지나 생태보전 구역은 여전히 공공이 직접 관리하되, 비핵심 지역부터 점진적으로 민간 책임 관리를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② ESG 기반의 민간 참여 기준 마련

모든 민간 참여가 허용되어선 안 된다. 단기 수익 중심의 투기적 임업은 오히려 산림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탄소저감, 생물다양성 유지, 지역 일자리 창출 등의 ESG 요건을 충족한 기업과 단체에만 인증 기반 참여 자격을 부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림 보조금, 세제 감면, 참여 우선권 등을 연계해야 한다.

③ 산림 디지털 정보의 통합 개방

지형, 고도, 수종, 임도 현황, 산사태 위험지 등 산림 관련 공공 데이터를 민간과 지자체가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는 공공이 제공하되, 그 활용은 민간이 주도하게 만들면 관리의 효율성과 과학성이 동시에 올라간다. 현재 산림청이 추진 중인 디지털 전환 전략을 민간까지 연결하는 게 핵심이다.

④ 재해 예방 중심의 산림 평가 기준 도입

하층식생 제거, 방화선 조성, 계류 정비 등은 단순한 관리 작업이 아니다. 이런 작업을 수행할 경우, 산불 확산 가능성 저감률, 피해 면적 감소 효과 등 정량적 기여도를 산정해 보조금·세제 혜택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공공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민간이 ‘정밀하게 돌보는 임업’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제는 ‘보존이냐 개발이냐’가 아닌, ‘누가 숲을 돌볼 것인가’의 문제다

산불은 더 이상 예외적인 기후 재난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피해와 사망, 그리고 뒤따르는 산사태와 지역 붕괴는 모두, 숲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구조적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임도를 낼 것이냐 말 것이냐,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낡은 이분법 속에 갇혀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숲을 누가, 어떤 책임과 조건 아래 돌볼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바로 그 질문이다. 민간에게 숲을 열되, 공공이 기준을 설정하고 감시하는 책임 기반 자원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산림을 ‘쓸 수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가장 현실적인 원칙. 지금 이 구조 전환 없이는, 산불 재난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올해 복구 작업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숲을 복원하는 일이, 곧 산림 정책을 바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단순한 재해 복구가 아니라, 재난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첫 번째 실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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