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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주 4일제인가

소상공인의 입장에서 본 주 4.5일제

by 배훈천

http://www.gstandard.net/news/articleView.html?idxno=1248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30일 페이스북에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을 OECD 이하로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제로 나아가겠다"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도입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상위 10% 대기업 노조 조합원이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가진 일부 상층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 하루 벌이마저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 될 수 있다.


우선 주 4.5일제 논의는 최저임금 수준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주 4.5일제는 ‘쉴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일할 기회를 줄이는 제도’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주 4일제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 일부 직장인들은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쉬는 날에 부업을 하거나 자영업에 진출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영세 자영업 시장과 비숙련 일자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기존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생계는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근무 시간은 줄어들지만 임금은 줄어들고,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들은 결국 플랫폼 노동이나 비정규직 시장에 내몰리게 된다. 제도의 겉모습은 '쉼'을 말하지만, 실제 작동은 '추가 노동'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대기업 정규직과 공공부문 종사자 중심의 상층 노동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전체 노동시장 참여자에게는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아름다운 명목으로 주 52시간제를 급하게 밀어붙였다. 대기업은 조직 내부 조정으로 충격을 흡수했지만,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과 인력난에 시달렸고, 자영업자들은 수익은 그대로인데 비용만 늘어났다. 직장인들도 저녁에 시간만 생겼지 수입이 줄어 외출과 소비를 줄였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이번 주 4.5일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주 4.5일제가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소상공인들에게 사실상 사망선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나타난 소비 위축과 조기 귀가, 주말 외출 감소 같은 생활 패턴이 고착화되고 있는데, 주 4.5일제는 이런 흐름을 제도적으로 굳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쉬는 날이 늘지만 소비는 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이들이 그 시간을 국내가 아닌 해외 소비에 쓰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연휴가 길어질수록 도심 상권은 한산해지고, 공항은 붐비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영업자들은 손님을 잃고, 내수 경제는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주 4일제는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내수경제가 무너지면 일자리는 줄고,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공공서비스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공무원의 근무일이 줄어들어 행정 서비스 이용 시간은 더 짧아진다. 지금도 시민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주민센터를 이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사건 적체와 인력 부족으로 민사·형사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데, 근무일 단축은 사법 서비스 지연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인구 대비 공무원 수가 미국, 일본보다 많은 편인데, 주 4.5일제를 도입하면 더 많은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이고 이는 공공부문의 비대화를 불러 국가경제에도 해로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행정과 사법의 효율성은 낮아지고, 국가 경쟁력은 떨어질 우려가 크다.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제로 나아가자’는 정책은 중상층에게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서민들에게는 생계 위기를 키우는 독이 될 수 있다.

지금 서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더 많고 더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조선, 배터리와 같은 고용 파급력이 큰 전략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유인을 마련하고, 중소기업과 연계된 고용 연동형 인센티브도 함께 확대할 필요가 있다.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노동시장 안으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다.

결국 이재명 후보의 주 4일제 공약은 그가 진정한 서민 노동자의 대변인이 아니라, 기득권 상층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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