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젓가락’으로 여성혐오를 저질렀나, 위선의 가면을 찢었나
2025년 대선 마지막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가 꺼낸 '젓가락' 발언은 단숨에 이번 대선의 최대 파문으로 번졌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향해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이재명 후보가 사실 가족 간의 특이한 대화를 해서 문제된 것을 아까 사과했다. 민노당 기준으로 어떤 사람이 여성에 대해 얘기할 때 ‘여성의 성기나 이런 곳에 젓가락을 꽂고 싶다’고 했다면 이건 여성 혐오에 해당하냐, 아니냐.”
여론은 즉각 요동쳤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경악과 비난이 쏟아졌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이 비방과 험담, 입에 올릴 수도 없는 혐오의 언어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및 그 가족 그리고 모든 유권자를 향한 혐오 발언이며 매우 중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라며 이준석 후보를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파문이 커지자 이준석 후보는 해명에 나섰다. 그는 “혐오나 갈라치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진영 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민주 진보 진영의 위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발언 취지를 밝혔다.
나 역시 이 토론을 시청하며 문제의 질문을 들었을 때, 정책보다 네거티브 검증에 치우쳤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 그것이 성폭력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불바다가 된 언론의 반응을 보며, 혹시 나의 성인지 감수성이 둔감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부주의한 표현을 여성혐오로 과장하는 건 본질의 왜곡
이준석 후보가 방송에서 “젓가락을 성기에”라고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특히 국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토론의 장에서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일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언론재단의 성폭력 보도 실천요강은 “가해 방법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을 지양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며, 공적 발언에서도 그 기준은 유효하다.
이준석 후보가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데 미흡했던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실수를 두고 여성 혐오나 언어 성폭력으로 단정한 채, 후보직 사퇴와 정계 퇴출까지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공세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통화를 당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최고 등급 영화에서도 듣을 수 없는 수준의 극단적 욕설을 공당의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준석의 젓가락 발언은 그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의 발언 수위는 이미 공중파에 보도된 사례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이지 않다. 배우 홍선주는 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을 폭로하며 JTBC 뉴스룸에서 “성기에 막대나 나무젓가락을 꽂고 버티라 했다”고 증언했고, 손석희 앵커도 해당 발언을 그대로 방송했으며, 수많은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서 보도했다.
이와 같은 선례를 감안하면, 이준석의 발언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여성혐오나 언어 성폭력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표현의 부적절성과 혐오 낙인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준석 후보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여성혐오 발언을 했다며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 홍선주 씨가 “성기에 젓가락을 꽂았다”는 표현으로 고발했을 때, 그것은 여성혐오였는가? 아니면 고발 목적이었기에 용인됐고, 이준석은 ‘공격’ 의도가 있었기에 문제라는 것인가?
그러나 이준석 역시 유력 후보 자녀의 성폭력적 언행에 진보 진영이 침묵하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 이준석의 젓가락 발언을 여성혐오라고 낙인찍기에 앞서 그런 "혐오 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 자녀를 둔 후보가 성평등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발언을 여성혐오로 몰고 간 민주노동당의 태도는, 결국 이재명 후보를 감싸는 ‘정치적 이중대’로 비칠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이런 모순에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진보라면 이준석보다 유시민 청산이 먼저여야 한다
한편 유시민은 김어준의 방송에 출연해서 김문수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씨를 두고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설난영은 세진전자 노동조합 위원장이었어요. 대학생이 노동자와 혼인한 거죠. 그 관계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죠. 김문수는 너무나 훌륭한 사람인 거예요, 설난영이 보기엔. 나하곤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 내가 고양되었다고 느끼죠. 그러다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죠. 남편을 더욱 우러러봅니다. 경기도지사, 더더욱 우러러보죠. 대통령 후보까지 됐죠.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온 거예요. 대통령 후보 배우자란 자리가 설난영 인생에선 갈 수 없는 자리인데,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유시민의 발언에는 성기나 젓가락 같은 자극적인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는 노동자를 아래로 보고, 여성을 대상화하며, 학벌주의를 당연시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점잖은 말로 한 차별은 괜찮고, 직설적인 언어로 한 비판은 여성혐오인가? 유시민의 이런 발언에 침묵하면서, 이준석만 공격하는 민주노동당의 태도야말로 진정한 위선이다.
여성혐오에 맞선다는 진보정당이라면, 정작 가장 교묘하게 여성을 대상화한 인물부터 공론장에서 퇴출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이준석의 언어 성폭력은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TV 토론을 시청한 아동·청소년에 대한 명백한 정서적 학대”라고 밝혔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 정치판의 언어는 그간 국민을 모욕하고, 청소년의 정서에 유익하지 않은 사례로 차고 넘쳤다. 최근 민주당이 지귀연 판사를 향해 벌인 ‘룸살롱’ 프레임은 과연 교육적이었는가? 되레 성인이라면 룸살롱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고, 룸살롱과 단란주점은 뭐가 다르냐는 식의 대화가 방송과 SNS에서 유통되며 대중의 ‘성 산업 상식’을 넓히는 효과(?)를 낳았다.
공중파 뉴스와 대선 토론에서조차 대통령 부인을 ‘쥴리’라 부르고, 5.18 민주광장에는 여성 대통령의 나체를 표현한 작품이 전시되던 현실. 이런 사회에서 “성기와 젓가락”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고 마치 포르노가 송출된 양 분노하는 건 위선 그 자체다. 문제는 표현 수위가 아니라, 표현의 주체가 누구냐는 기준이 갈수록 더 이중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수많은 모욕적이고 비교육적인 사례들에는 침묵하거나 관대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유독 이준석의 ‘젓가락’ 발언에 대해서만 개거품을 물 듯 집단적으로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유교적 성엄숙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성과 무관한 폭언이나 인격 모독은 상대적으로 쉽게 용인하면서도, 성과 관련된 표현에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화적 이중잣대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준석의 젓가락 파동이 남긴 교훈
이준석의 ‘젓가락 발언’은 표현 방식의 거침 때문에 거센 역풍을 맞았지만, 그 질문이 던진 본질적 문제의식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은 성평등이란 가치가 진영논리나 이중잣대 위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성에 대한 불쾌한 표현에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더 구조적이고 심각한 여성 비하나 성폭력 은폐에는 침묵하거나 심지어 면죄부를 주는 사회 분위기는 성평등을 정략화할 뿐이다. 표현보다 본질, 말보다 구조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가족 검증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녀의 잘못을 부모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연좌제는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자녀의 성폭력적 언행이나 도박 문제가 대선후보의 공적 태도, 지도자 자질과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이재명 후보는 과거 “나쁜 짓한 자식 감싸면 살인범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자신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배우자의 주가조작 문제로, 문재인 정부는 사위의 해외 특혜 논란으로 국민 신뢰에 상처를 입었다.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녀 리스크’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한 이번 사태는 한국사회 여론의 형성 방식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주 ‘내용보다 형식’을, ‘정치적 메시지보다 표현의 세련됨’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성에 대한 과잉 예의주의, 곧 일종의 유교적 성엄숙주의는 때때로 중요한 메시지까지 삼켜버리는 오류를 낳는다. ‘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보지 못하는’ 여론 구조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키운다.
이번 사태는 이준석 개인뿐 아니라 개혁신당의 개혁 필요성도 드러냈다. 이준석은 장애인, 여성, 노인 문제 등 논쟁적 이슈를 대중 담론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그 방식은 혐오 표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번 발언 역시 혐오 조장으로 보긴 어렵지만, 대선 후보로서의 품위와 책임감을 고려할 때 표현의 정교함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그는 이제 ‘논쟁을 일으키는 정치인’에서 ‘국정을 맡을 수 있는 정치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언어와 전략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개혁신당 역시 정당으로서의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개별 정치인의 스타성에 종속된 듯한 현재의 구조에서 벗어나, 정당의 메시지와 공적 체계를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논란을 이준석이라는 한 정치인의 몰락이나 성공으로만 좁혀서는 안 된다. 대통령 선거라는 중대한 시기에 수일간 여론의 관심과 국민의 에너지가 소모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생산적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이 사태가 우리 정치와 공론장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와 시민사회는 위선적 도덕성과 방관적 침묵을 벗어나야 하며, 형식보다 내용, 진영 논리보다 공적 기준, 자극적 언어보다 책임 있는 태도를 우선하는 성숙한 공론장을 정착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