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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청와대를 다시 빼앗겨야 하나

청와대 복귀는 공간의 퇴행, 예산의 낭비, 세종이전의 좌초다

by 배훈천

청와대에 다녀왔다.


지금 아니면 청와대를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마침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어 가장 우선순위로 관람 일정을 잡았다.



1362_2686_4823.jpg 북악산 자락 아래 우뚝 선 청와대 본관, 푸른 기와지붕과 단아한 곡선이 인상적이다./배훈천



관람 중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개방이 나름 성공적인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매우 많았고, 단체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방문객도 상당했다. 특히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청와대를 관람하는 외국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더니, 청와대에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반반쯤 되어 보였다. 청와대는 이미 외국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조경이었다.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라는 대형 문구 뒤로 펼쳐진 드넓은 잔디밭과, 그 중심에 우람하게 자리 잡은 반송(盤松)의 자태는 단아하면서도 장엄했다. 본관 내부의 조명과 복도,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등은 하나하나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가 충분했다.


특히 영빈관의 웅장한 화강암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전북 익산 황등에서 채석한 화강암을 통째로 다듬어 만든 기둥이라 한다. 둘레가 3미터에 이르는 그 돌기둥의 규모는 감탄을 자아냈고, 눈앞에 펼쳐진 인왕산의 바위 능선과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은 마치 영빈관이 인왕산 바위 위에 지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1362_2687_041.jpg 하나의 뿌리에서 수많은 가지가 둥글게 퍼져 자라며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품위 있는 자태를 자랑한다. 이러한 형상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배훈천



청와대는 불과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 머물던 곳인데도, 고대 궁궐보다 더 웅장하고 고풍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풍광, 청와대 앞 서울 도심과 남산타워의 조망이 더해지니, 전통 궁궐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러한 웅장함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과연 이곳은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일할 공간으로 적절한가?



청와대는 오히려 전근대 왕정의 구중궁궐에 가까운 구조와 분위기를 갖고 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이 아닌, 국민을 대표해 일하는 대통령에게는 너무도 고압적이고 위엄 어린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의전과 경호를 받으며 일하게 되면, 아무리 서민적이고 민주적인 인물이라 해도 제왕적 통치 스타일을 갖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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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을 위한 공식 환영 행사와 연회가 열렸던 청와대 영빈관은 웅장한 기둥 구조와 전통 양식이 결합된 건축미로 눈길을 끈다. 전북 익산 황등에서 채석한 화강암으로 만든 기둥이 건물의 위엄을 더한다./배훈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발표했을 때 엄청난 비판과 논란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떻게 보면, 탄핵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게 된 윤석열의 운명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발표하던 그때부터 예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대통령실 이전을 반대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충분한 공론화 없이 졸속으로 결정되었다는 절차적 문제. 그러나 만약 그때 공론화를 길게 거쳤다면, 오늘날처럼 국민이 자유롭게 청와대를 관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리한 결정 같아 보였지만, 당선자의 결단이 있었기에 청와대는 비로소 국민의 공간이 되었다.


둘째, 막대한 이전 비용과 예산 낭비. 비용에 대한 정확한 계산은 없지만, 2022년 5월 개방 이후 2025년 3월까지 누적 관람객 수가 700만 명을 넘었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고 본다.


셋째, 안보 공백과 지휘체계 혼선에 대한 우려. 이는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실로 사용하는 데 따른 대표적 비판이었다. 실제로 군 지휘 체계의 공간적 분리, 경호·보안 충돌 문제 등은 일부 기술적 보완조치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효한 비판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세종시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 다시 대통령 집무실로 되돌려야 할까?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청와대를 다시 집무실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용산 이전이 무속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에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윤석열 정부의 졸속성과 미신성을 비판한다면서도, 그에 대한 정치적 반사 작용에 불과한 대응으로 읽힌다.


이미 수천억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어 용산으로 이전된 상황에서,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이중의 낭비를 초래하는 일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이미 관광 문화시설로 자리 잡은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개방 초기인 2022년 5월에는 외국인 관람객이 1,600명에 불과했지만, 2025년 3월 현재 누적 외국인 관람객은 약 8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명실상부한 국제적 문화자산이 된 청와대를 다시 집무실로 바꾸겠다는 명분은 희박하다.




1362_2689_1458.jpg 청와대 본관 병풍에 적힌 휘호 私愛日日新之大韓民國 “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뜻이다./배훈천



■이재명 후보의 ‘세종 이전’ 공약, 청와대 복귀와 충돌


한편,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이전은 매우 바람직한 구상이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의 약 3분의 2가 세종시에 위치해 있는 만큼, 대통령이 그곳에서 집무할 경우 부처 간 협업과 정책 결정의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게다가 수도권 과밀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한 결단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세종으로 이전하는 것은 말로만 ‘균형 발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재명 후보가 세종으로 가겠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청와대로 돌아가겠다는 상충되는 구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종시 이전 공약이 단지 선거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청와대에 들어앉는 순간, 세종시로의 이전은 우선순위에서 한없이 뒤로 밀릴 것이 분명하다.


윤석열의 용산 이전이 무속적이라 비판받았다면, "용산은 윤석열의 잔재이므로 들어갈 수 없다"라는 주장 역시 또 하나의 정치적 미신이라 말할 수 있다.



■청와대 복귀는 공간·예산·균형 발전 모든 면에서 역행



대통령 집무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기겠다는 생각은 매우 부적절하다.


첫째,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의 형태와 분위기를 갖고 있어 제왕적 통치 스타일을 강화할 우려가 크다.


둘째, 이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용산 집무실을 폐쇄하고 다시 청와대를 정비해 들어가는 것은 명백한 예산 낭비다.


셋째, 청와대에 들어앉는 순간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이전은 우선순위에서 한없이 뒤로 밀리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가는 선택은 윤석열 정부가 용산 이전 문제로 새 정부의 시작부터 불필요한 정쟁을 유발하면서 국력 낭비를 불렀던 것과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용산 이전은 현재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청와대라는 선물을 품에 안긴 것이 되었지만, 정권 차원에서 보면 국정의 핵심이 아닌 사안에 힘을 쏟다가 출범 초기부터 국정 동력을 잃은 사례였다.


이재명 후보의 청와대 복귀는 ‘욕하면서 담는다’는 말처럼 그 시작부터 윤석열 정부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이제 국민의 공간이다. 청와대는 계속 국민의 품에 남겨두고, 용산 집무실을 사용하면서 세종 이전을 서두르는 것이 차기 정부의 바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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