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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속도로 예산 전액 삭감

광주는 잡아놓은 물고기인가

by 배훈천

광주는 이번 대선에서 전국 1위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84.8%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돌아온 첫 번째 소식은 다름 아닌 냉정한 예산 삭감 통보다. 대통령 지역 공약으로 채택됐던 호남고속도로 동광주~광산 IC 구간 확장 사업의 올해분 국비 367억 원이 지난 19일 정부 추경안에서 전액 삭감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선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사업 대상지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산월 IC 구간은 5년 연속 교통 서비스 평가에서 최하위인 ‘F 등급’을 받는 등, 매년 교통량이 증가해 확장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사업은 단순한 도로 확장 차원을 넘어, 수년째 교통 지옥 속에 방치된 시민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이자,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핵심 인프라 과제다.
정준호 광주 북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를 통해 “광주시가 책정된 시비 67억 원조차 집행하지 않아, 정부가 사업 추진 의지를 의심하게 됐다”라고 지적하며 광주시의 소극적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무능하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번 사안을 통해 광주시 행정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무기력한 지를, 지역 국회의원의 지적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준비 부족과 대응 미흡은 물론, 중앙정부 간담회에도 불참했다. 이쯤 되면 무능을 넘어 업무 태만이다. 이러고도 세금으로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국회의원이 모든 책임을 광주시에만 전가하며, 자신은 최선을 다한 것처럼 포장하는 모습 역시 유감스러운 정치 행태다. 이번 사안은 광주시와 지역 국회의원 간 협업이 완전히 무너진, 전형적인 실패 사례다. 시장도, 지역 의원도 모두 여당 소속이지만 실질적인 공조는 없었고, 결국 서로 책임만 떠미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기고 있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은 통렬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의 전액 삭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 지역공약이 폐기된 것은 정치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며, 이는 지역 차별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지자체의 집행 실적 부재만을 근거로 예산을 전액 삭감할 것이 아니라, 지역 민심과 행정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한다. 예산의 유예나 단계적 협의, 분담률 조정 등 다양한 대안적 조치가 있었음에도, 왜 그러한 가능성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정치인 개인의 면피와 치적 쌓기를 위한 소재로 이 사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지역 정치의 반성적 계기로 삼고,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광주시와 지역 국회의원들은 이제 늦은 해명과 공개적 책임 공방을 멈추고, 공동 협상단을 구성해 정부와의 전략적 협의에 나서야 한다. 사업 취소를 기정사실화하지 말고, 예산 복원을 전제로 한 실질적인 조정안을 마련해 정치적 통로를 다시 열어야 한다.

동시에, 이재명 정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약과 실제 실행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광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징적인 도시’로 언급됐지만, 실제로 눈에 보이는 변화나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은 늘 부족했다. ‘광주와 함께 미래로 간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이제는 말이 아닌 정책과 예산으로 보여줘야 한다. 공항, 철도, 고속도로, 공원 등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응답할 때다.

호남고속도로 확장 사업은 단순한 도로 공사가 아니다. 이 사업은 광주 시민이 새 정부에 보낸 신뢰에 대한 시험이자, 이재명 정부가 광주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광주는 ‘잡아놓은 물고기’가 아니다. 정당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며, 예산과 정책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 정당한 기대가 배신당할 때, 광주시민의 분노가 얼마나 깊고 날카로울지를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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