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잊힌 학동, 외면된 무안공항

정치의 선택적 기억이 만든 참사의 이중 기준

by 배훈천

■4년째 추모식만, 바뀐 것은 없다


2025년 6월 9일, 광주 동구청 앞에서는 학동 재개발 붕괴 참사 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2021년 철거 중이던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사망한 이 참사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책임 규명과 제도 개혁 없이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구호 속에 반복되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임택 동구청장, 지역 정치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황옥철 유가족 공동대표는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행정기관의 관리·감독 소홀도 있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며, “광주시는 유족에게 많은 약속을 했지만, 매년 여는 추모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추모관 건립은 계획만 존재할 뿐, 착공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행정적 책임이 가장 명확했던 임택 동구청장은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고, 올해 추모식에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고의 본질은 불법 재하도급과 토호-조합 간 유착이었고, 구조적 무관심과 정치적 무책임이 이를 방조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6개월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 사고는 179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사고 발생 6개월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진상조사 자료를 받지 못했고, 사고조사위원회는 국토부 산하의 ‘셀프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가족들은 “이 참사는 20년 전, 둔덕 제거 요구가 묵살되면서 이미 예견된 사고였다”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사고 열흘 전 열린 조류충돌 대비 회의에도 제주항공은 불참했고, 관련 훈련도 실시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제주항공의 안전관리 부실, 정보 비공개, 성의 없는 예비보고서 등을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우리는 보상이 아니라 참사 재발을 막는 사회를 원한다”며, 유가족들은 6월 23일 김포공항에서의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무안공항.jpg


■세월호와 이태원 그리고 학동과 무안공항


세월호 참사 이후, 수년간 수많은 정치인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 동력을 잃었고, 결국 탄핵이라는 정치적 결말에 이르렀다. 이태원 참사 역시 윤석열 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고,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 현장을 찾아 헌화하며 추모의 뜻을 밝혔다. 이태원은 정권 교체의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학동과 무안공항은 어째서 이토록 조용한가. 만약 이 두 참사가 수도권에서 발생했더라면, 정권을 흔들 수 있었던 중대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사건들은 유가족들의 절규 외에는 사회적 공론장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혹시 참사의 사회적 파장이 정파적 이익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특정 정권에 불리한 사건이면 끝까지 정치적 책임을 묻고, 정파적 부담이 있는 참사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중 잣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참사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치 상태에 놓는 것도 결국은 다른 방식의 정치적 소비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학동 참사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가족들과 약속했던 추모관 건립을 조속히 추진하고, 당시 행정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공개적 평가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구청장이 형사적 책임을 진 사례가 있다면, 학동 참사 역시 마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정치적 책임이 논의돼야 한다.


특히 당시 행정 책임자였던 임택 동구청장은 시민들의 반복된 위험 제보와 현장 관리 부실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아무런 성찰 없이 그를 다시 공천했고, 지역 유권자들은 대안 없는 선택 속에서 재신임을 부여했다. 민주당은 공천에 앞서 책임 정치의 원칙을 다시 점검해야 하며, 지역사회도 공직자의 책임을 평가하는 정치적 기준을 엄정히 세워야 한다.


무안공항 참사와 관련해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보다 직접적이고 책임 있는 대응에 나서야 한다. 유가족들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해 특검이든 독립 조사위원회든 즉각적인 진상 규명 체계를 구성하고,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책임을 요구받았고, 국민은 그 책임 이행 여부로 정권을 평가했다. 무안공항 참사도 다르지 않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사고의 진실을 감춘다면 그 정부 역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결단해야 한다. 유족 앞에 사과하고, 특검을 도입하고, 제도를 고쳐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호남고속도로 예산 전액 삭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