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마음을 듣는다’는 타운홀미팅을 마치고 호남의 마음은 왜 심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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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취임 후 첫 타운홀미팅을 열었다. "호남의 마음을 듣는다"는 제목 아래 진행된 이 행사는, 민주당 정부가 호남을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기대를 모았다. 행사 시작과 함께 이 대통령은 “나는 제1시민에 불과하며, 대통령은 충직한 일꾼일 뿐”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낮췄고, 현장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졌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는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의 윽박에 가까운 질책을 받았고,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의 묵념 제안은 외면당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성과라고는 군공항 이전을 위한 TF 구성 방침뿐이었다. 같은 날 발표된 해양수산부의 부산 연내 이전 결정과 비교하면, 광주 타운홀미팅은 형식은 화려했으나 결과는 초라했다. 남은 것은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의 상실감과 모욕감뿐이었다.
과연, 이 타운홀미팅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1. 6·25 전쟁 기념식 대신 광주 방문
먼저 지적할 문제는 방문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6·25 전쟁 기념일, 국군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국가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같은 날 광주를 찾았다. 지역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였겠지만, 기념식 참석 후 광주를 방문했다면 불필요한 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기념일을 생략하고 특정 지역을 먼저 찾은 행보는, 의도와는 달리 광주·전남이 국가적인 가치와 상충되는 지역처럼 비칠 여지를 남겼다. 기념일의 상징성과 지역 방문의 의미가 충돌하면서, 결과적으로 지역을 배려하려던 메시지가 왜곡되어 정치적인 고립감이나 이질감으로 전이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일부 언론이 이를 문제 삼은 점만 봐도, 일정 선택 하나가 정치적인 해석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2.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에 대한 냉대
타운홀미팅의 첫 의제는 무안공항 통합 문제였고, 현장에는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도 참석했다. 유가족 대표는 항공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며, 행사일이 6·25 전쟁 기념일이라는 점을 감안해 참사 희생자와 전쟁 피해자를 위한 짧은 묵념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묵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진상조사가 진행 중인데, 내가 관여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말을 남겼다. 유가족의 요청이 없었더라도,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지역민에 대한 위로는 대통령으로서 기본적인 도리였다. 그럼에도 유가족의 제안조차 외면한 것은, 대통령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상징적인 책임 의식마저 저버린 냉담한 대응이었다.
3. 지방자치단체장은 대통령의 부하직원인가
이번 타운홀미팅에서 가장 강하게 각인된 장면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도지사의 발언을 자르며 반복적으로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해줘야 하냐”라고 다그친 순간이다. 그 어투는 질문이라기보다 윽박에 가까웠고, 실제로 두 단체장이 대통령 앞에서 움츠러들고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이 과정에서 두 단체장이 지역 발전 전략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실행 계획도 없이 막연히 중앙정부에 “뭐든 많이 해달라”는 식으로 대응한 모습은 실망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우리 단체장들이 이토록 무능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목도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체장이 대통령에게 입에 발린 찬양만 늘어놓고, 자신이 원하는 지원 방향조차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점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요구한 ‘구체적인 방안’이란 본래 실무자들이 정교하게 입안하고,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중앙정부에 제출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즉석에서 답하라는 식의 요구는 무리이며, 대통령이 마치 마법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말하라”라고 주문하고, 그 자리에서 큰 선물을 하사하는 듯한 연출 역시 전근대적이다.
이날 타운홀미팅에서 대통령이 구체성 없는 정책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두 단체장에게는 분명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두 사람을 사실상 부하직원처럼 다루며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모습은, 그 단체장을 뽑은 유권자들에게까지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생중계된 그 장면은 예우 없는 대면과 수직적인 위계질서의 연출로 비쳤고, 이는 마치 조선시대 왕과 신하의 관계를 연상케 했다.
4. 광주 군공항 통합이전, 정치 이벤트인가 정책 해결인가
광주 제1전투비행단을 무안으로 이전하는 문제는 지난 10년간 선거철마다 반복된 정치 공약이었다. 이미 특별법까지 제정된 사안이지만, 무안 군민의 반대로 이전은 진척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이 문제를 국가 시책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이러한 지연과 갈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실 주도로 TF를 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조정 주체가 지역에서 중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는 지역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에 의존한, 지방자치의 실패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김산 무안군수는 군공항 이전 반대의 이유로 “신뢰의 문제”를 들었다. 광주시가 제안한 1조 원 규모의 지원안이 터무니없고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신뢰의 문제였다면, 무안군수, 전남도지사, 광주시장, 지역 국회의원 모두가 민주당 소속이고,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로 재직할 당시에도 이 문제가 계속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미 그 시점에서 정당 차원의 조정이 이뤄졌어야 마땅하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자 갈등이 봉합되는 듯한 지금의 모습은, 무안군민의 동의에 기반한 해법이라기보다 대통령 권위에 따른 형식적인 수용일 가능성이 크다.
5. 낙후를 감내하라는 또 한 번의 희망고문
여기에 더해, 무안공항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인구가 증가하는 무안에 군공항을 들이는 것이 타당한가? 적자 누적인 상태인 무안공항이 군공항과 통합된다고 해서 항공 수요가 살아날 보장도 없다. 자칫 광주시민의 항공이동권을 후퇴시키고, 무안은 무안대로 기피지역이 될 수 있다.
이전 정책의 실효성과 장기적인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 전략이 필요하다. 광주공항을 서남권 관문 국제공항으로 육성하고, 무안공항은 산업·물류 중심으로 특화하며, 군공항은 스스로 유치 의사가 있는 지방 소멸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지역 균형 발전과 호남 메가시티 구상에 부합한다.
TF 구성이 행정 절차상의 속도를 가져올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군공항 이전이 완료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0년은 걸린다. 그 기간 동안 탄약고 이전, 국제선 접근성 확보 등 광주·전남 지역민의 실질적인 숙원 과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 것이다.
타운홀미팅에서 마륵동 주민이 직접 제기한 탄약고 이전 문제 역시 또다시 10년 이상 뒤로 밀리게 된다. 군공항 이전 사업만 바라보며 다른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리는 셈이다. 대통령이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연내 이전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과 비교해 보면, 이번 타운홀미팅에서 광주·전남에 구체적으로 주어진 성과는 실질적으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말뿐이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아무런 성과 없이 ‘이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남긴 채, 광주시민은 앞으로도 불편과 재산상의 손해를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크다.
타운홀미팅은 이재명 대통령의 첫 방문지로 광주를 선택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말잔치로 끝났다. 대통령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줄 마법 램프의 지니처럼 등장했으나, 실속은 없었다. 문제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비전과 전략 없이 정부만 바라본 광주·전남의 총체적인 무능이다.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