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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Jan 19. 2024

고통은 가족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내 마음만 내려놓으면 해결될 것을

정작 고통은 나에게로 부터 생산되고 있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큰아이 방학과 동시에 다시금 친정을 방문했다. 약 일주일간 나의 보금자리를 비우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머물렀다. 요식업을 하시는 엄마는 바쁘시니 친정에 머물러도 대부분의 시간은 나의 아이들 또는 형님의 아이들과 함께한다.


저녁시간, 엄마는 하루일과를 마치시고 잠자리에 들어 오셨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 한참을 화면에 집중하신다.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 보시는 거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내가 물었다.


" 엄마, 아빠가 많이 그리우세요?"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 할만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다만, 아빠와 함께 세월을 어떻게 금새 잊겠니.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여전히 그립지."


엄마는 아빠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 보신 후 잠이 드셨다. 하루의 고단함에 지쳐 코까지 골며 주무시는 엄마를 바라본다. 다시한번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다.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셨어요?'

'아빠와 우리를 떠나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어요?'






우리가족은 모두 모여 아빠의 산소에 들러 아빠의 마지막 배웅을 해드렸다. 아빠는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무엇 하나 해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하지만 표현은 하지 않으셨다. 거친말투와 단호한 성격탓에 가족들은 아빠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점점자라 아빠의 키를 넘어선 성인이 된 순간부터는 입장이  바뀌었다.  우리가 아빠에게 함부로 잔소리를 했던 적이 많았다.


"아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시면 않되죠!"


아빠는 어느날인가부터 자식들의 잔소리에도 그저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그때마다 아빠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아빠의 마음을 좀 더 해아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해도 이제는 소용없다.






다시 돌아온 나의 자리, 마중온 남편과의 만남이 반가운것도 잠시다. 나에게 집이라는 곳은 안도감과 동시에 책임감 이라는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곳이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공기와 맏닿은 순간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거짓말 처럼 얼굴은 굳고 입은 무거워진다.

어떠한 대화도 단절한 채 핸드폰,축구경기관람,쇼퍼와 줄곧 몰아일체가 되는 남편. 자유와 쉼을 반납해 가며 애지중지 키웠던 두 남매들. 이제는 조금 컷다고 엄마가 하는 말에 토를 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에게 가장 고통을 넘겨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의 비교 같은 양날의 극과극을 하루에도 수십번 오간다. 그럴때마다 나는 외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억압을 벗어나 저는 여기를 떠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저녁을 먹는것을 시작으로 하루일과가 마무리 되어갈때쯤 아이들과 나는 한참을 아둥다웅 한다. 결국은 내 목소리가 커지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고 나면 나는 기진맥진 진이 다 빠진다. 이쯤되니 슬슬 아이들이라도 잘 키워보자는 나의 다짐도 점점 희미해진다.


아이들을 잘 키우지도 그런다고 돈을 잘 벌지도 못하는 나는 전업주부이다.






친정에서 돌아온 날 저녁 이었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느라 지치기도 했고, 돌아오기 전날 친정에서 잠을 깊이 못잤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저녁만 간신히 챙겨준 후 남편과 아이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스스르 눈이 감기면서도 내입은 아직 내 할일이 남았다는 것 마냥 움직이고 있다.


"애들아 얼릉 양치하고 씻고 자야지! 애들아 양치하고 씻고......"


아이들을 씻기지 않고 먼저 잠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마저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눈을 번뜩 떳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과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스스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고 있었다. 낯선 풍경이 너무 신기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 스스로 이미 잠잘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알고 봤더니 남편은 나처럼 아이들이게 빨리 끝내기를 재촉하기 않았다. 느리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게끔 기다려준 것이다.


내 마음만 내려놓으면 해결될 것을,  내스스로 나를 옭아매어 놓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당연시 하게 고통을 주고 있노라 탓하고 있었다니. 정작 고통은 나에게로 부터 생산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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